수동적 신뢰외교에 갇힌 박근혜 정부
동북아시아 정세가 또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힘이 격렬하게 맞부딪히고 있다. 19세기 말의 국제 정세를 연상시킨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이런 정세 속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거나 안이한 판단을 하게 되면 언제든 비극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야말로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격랑을 헤쳐나가는 방법으로 ‘신뢰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개인들이 공존하기 위해 상호신뢰
사법부의 ‘엉뚱한 소통’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의 최대 화두는 ‘소통’이다. 법원장들의 취임식마다 ‘소통’이라는 문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최근 서울법원종합청사를 비롯해 대법원 등에서 열린 다양한 문화행사 역시 ‘소통’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들이다. ‘캠퍼스 열린 법정’이라는 이름으로 재판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찾아가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실제 재판을 진행하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는 것 역시 대법원장이 강조하는 ‘소통’의 일환으로 볼
15년 만에 재발한 ‘재벌총수 리스크’
14일 열리는 전경련의 올해 마지막 회장단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썰렁할 전망이다. 상당수 그룹 총수들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참석이 어려워 ‘반쪽회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SK와 한화는 총수가 배임 또는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이다. 동양의 총수는 사기성 기업어음 및 회사채 발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포스코 회장은 정부의 사퇴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STX의 총수는 경영실패로 쫓겨났다. 금호아시아나는 4년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다. 한진·두산·동부·동국제강…
엘리트 예술에서 생활 예술로
전시 기간이 워낙 길어서 넋 놓고 있다가 마지막 주에 이르자 회사에 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대구에 내려갔다. 땡땡이 호박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여류 작가 쿠사마 야요이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금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작가 중 한 명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100점이 넘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는 소식은 미술계에선 제법 신선한 충격이었다. 입장권은 5000원이었지만 차비까지 감안하면 10만원 가까이 내고 본 가장 비싼 전시. 그러나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고 왔다.유복하지만 불화한 가정에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는 성
김두관 균등 지원은 안 되고 홍준표 차등 지원은 괜찮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해 12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전임 김두관 도지사의 핵심 공약 사업 ‘모자이크 프로젝트’를 반 쪽 낸 때는 올해 3월 20일이었다. 모자이크 프로젝트란 경남 지역 18개 시·군 모두에 대해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4년 동안 200억원을 ‘종잣돈’으로 균등하게 지원하는 사업이다.모든 시·군에 똑같이 200억원을 지원하는 까닭은 이랬다. “으뜸도시인 창원이든 아니면 인구가 가장 적은 의령이든 지역마다 발전이 덜 된 지역은 있게 마련
가을에 노래하는 ‘봄의 문학’
작가 최인호가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후, 이런저런 기사와 칼럼을 썼다.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 중 한 명이었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작가와의 형평을 고려하면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부담도 없지 않았다. 이 글은 그 과잉 아닌 과잉에 대한 변명이자 한국문학에 대한 작은 바람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작가 사후 일주일 정도 지나 기자협회보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최인호와 신문과의 인연을 특집으로 하는 기획이라는데, 당연히 내게는 조선일보와의 인연을 궁금해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기억을 전했는데, 고인보다 한 세대
동양 핑계로 포퓰리즘 규제 넘쳐날라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까마득히 몰랐던 동양그룹 사태가 국정감사 ‘핫 이슈’로 떠올랐다.5만명에 육박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와 CP(기업어음)에 투자했다가 2조원이 넘는 돈을 떼이게 생겼단다. 분통터질 일이다.저축은행 사태와 달리 회사채 CP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서민이 아니라 ‘좀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돈 앞에 부자와 서민이 다르지 않다. 생돈 떼이는 마당에 재벌인들 ‘허허’ 웃어넘기겠는가. 게다가 5만명이라는 엄청난…
방사능 불안에 대처하는 일본의 착각
과거사·영토 문제에 이어 방사능 문제가 한일간에 또 다른 갈등요소로 떠오르고 있다.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등 8개현 수산물에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빠르면 오는 16일 세계무역기구(WTO) 상품위원회 산하의 식품·동식물위생검역(SPS)위원회 회의에 문제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의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철회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겠다는 입장이다.일본은 중국과 대만, 러시아 등이 일본 수
법은 주먹보다 느리다
2011년 7월 27일 오전 7시3분. 은마아파트 청소노동자 김정자씨(당시 64세)가 전날 폭우로 아파트 지하실에 가득찬 빗물을 퍼내려 들어갔다가 숨졌다. 사인은 감전사였다. 당시 작업을 지시했던 관리소장과 계장은 “작업을 지시한 적이 없다. 본인 과실”이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필자는 법조기자로 3년을 보낸 뒤 사건팀 기자 생활이 햇수로 2년째에 접어들던 해에 이 사건을 접했다. 김씨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인의 딸은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용역업체를…
청와대의 포스코·KT 인사개입은 불공정행위
포스코 정준양 회장과 KT 이석채 회장이 최근 청와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잇달아 나왔다. 포스코는 정 회장의 사의표명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는 해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국세청이 마치 때를 맞추기나 한 듯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하면서 청와대 사퇴 압력설은 무게를 더한다.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말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 회동 때 정 회장을 제외했다. 포스코는 재계 6위의 대기업이다. 또 정 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박 대통령의 방중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찬 초대 대상에서 빠졌다.눈길을 끄는
동성애 ‘사랑과 결혼 사이’
지난 7일 서울 도심에서 영화감독 김조광수씨와 영화 배급사 대표 김승환씨가 동성 결혼식을 열었다. 공개적으로 결혼하겠다고 밝힌 것이 지난 5월이니 충동적으로 행사를 연 것이 아니다. 이들이 원한 것은 동성애자 결합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였다. 구청에 혼인 신고를 접수했다는데, 현행 헌법이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만큼 혼인 신고가 반려되면, 헌법 소원까지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는 피할 수 없는 뜨거운 화두를 손에 쥐게 되었다. 1996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격화된 찬반양론 속에서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
‘해딴에 틈새학교’의 꿈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익힐까? 물론 100%는 아니지만 학교나 학원이 아이들에게 제 노릇을 다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이 그 방증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경남에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조선업체가 있다. 월급도 세고 다른 대우도 빵빵한 대기업이다. 여기 취직한 젊은이 이야기다. 그이는 설계가 전공인데 자기 소속 부서에서 제작한 설계도를 보고 만든 제품이 불량으로 반품돼 왔다. 확인해 보니 그 젊은이가 제대로 못한 탓이었
‘야메 평론가’ 황현산 열풍
지금 한국 문학에서 가장 뜨거운 문인은 문학평론가인 황현산(69)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다. 어떤 소설가처럼 하루키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거나, 어떤 시인처럼 트위터 정치로 논란을 일으켜서가 아니다. 조용히 자신만의 문장과 삶의 기품으로 문학하는 후배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자신의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그의 문장을 인용하며 퍼 나르고 있고, 트렌드에 예민한 패션지와 영화 잡지까지 그의 인터뷰에 열심이다. 그의 생애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는 벌써 4쇄를 찍었다. 요즘같은 세상
문제는 ‘거위 털’이 아니다
거위 털이 뭐 어쨌다고.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거위 털’ 발언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세제개편안을 내놓고 증세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느라 “이번 세제 개편은 거위에게서 고통없이 털을 뽑는 취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세제 공무원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얘기였으니 별 생각없이 뱉은 말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어차피 뽑아야 할 털이라면 안 아프게 뽑는게 거위한테도 좋고 뽑는 사람도 편하다.일단 설화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으
한국과 일본 그리고 소녀상(像)
미국에서 최근 ‘소녀의 상(像)’이 화제다.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시립도서관 앞 공원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면서다. 이 동상은 현지 한인 동포단체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2년 이상 지속적으로 글린데일시 정부를 설득하고 자체적으로 3만 달러를 모금해 건립됐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이 동상의 건립에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일본 총영사는 부에나파크 시의원 5명에게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