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두 편의 단편을 소개한다. 하나는 한국의 젊은 작가 조해진(38)의 ‘빛의 호위’. 또 하나는 미국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우선 ‘빛의 호위’에 대해서. 문학동네가 주관하는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단편은 나치 시절의 벨기에와 뉴욕과 서울의 지금을 넘나든다. 말하자면, ‘남은 자의 예의’에 대한 나지막한 목소리다. 우선 1940년의 벨기에. 유대인 동원령이…
시간·비용 줄이려고 안전 포기한 한국 금융
2006년 1월22일, 도쿄 인근 나리타 공항에서 한국인 승객 139명이 12시간 동안이나 농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폭설로 인해 항공기가 결항되자 항공사인 JAL에 항의한 것이다. 국제공항에서 보기 드문 모습인지라 일본은 물론이고 전세계 언론에 상황이 보도됐다. 당시 승객은 모두 320여명이라는데 유독 한국인 승객 139명만 농성에 나서 화제가 됐다.외국의 국제공항이라 얘깃거리가 됐겠지만, 국내에서 항공기 결항이나 지연에 대한 항의소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폭우나 폭설로, 강한 바람이나 짙은 안개로 항공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인데도…
세월호 비극과 박 대통령의 패션외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했다. 지난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의 튀는 ‘드레스코드’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참석자 모두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려는 듯 검은색 정장을 입었는데 유독 박 대통령만 화사한 파란색 정장을 걸치고 있었다. 상주(喪主)와 조문객이 바뀐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실제로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30초간의 묵념을 제안한 것도 박 대통령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 측이었다고 한다.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방한
국민 법감정에 고민 깊어가는 사법부
“무기징역 정도로 선고 안 하면 가만히 안 둘 걸요.”22일 현재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이레째에 접어들고 있다. 당장 현장에 갈 수 없는 법조 기자들도, 법원에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작성해야 하는 판사들도 모두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초·중고생 자녀를 둔 판사들은 “아이들이 눈에 어른거린다”며 술 약속도 미루고 집으로 돌아갔다. 사고발생 다음날, 오후 8~9시가 되도록 기록을 검토하며 불을 밝히던 많은 법관들의 사무실이 닫혀 있었다. 오
임원 연봉공개의 두가지 편견
“연봉공개 대상을 확대하고, 보수 산정기준도 공개할 필요” “미등기임원까지 연봉공개는 포퓰리즘”.올해 처음 시행된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보수공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연봉 공개대상을 더 넓히고, 고액연봉을 지급하는 기준까지 공개하라고 압박한다. 반면 경제계와 보수언론들은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맞선다.연봉공개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두 가지 편견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먼저 보수가 많은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이다. 대다수 대기업들은 연봉공개를 하
품위 있는 사회를 위하여
경찰은 최근 “경찰에 대한 민원인들의 소란·난동 행위로 공무집행 방해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민사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의 이런 방침은 실은 지난해 하반기에 세워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경찰이 민원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을 낸 것은 901건이었는데, 같은 해 상반기 5건에 비하면 180배 급증했다. 경찰의 공무 집행을 방해하면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소송까지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민원인들의 소란행위를 줄일 수 있을까? 경찰이 만우절(4월1일)을 앞두고 112로…
경상도에서 3월 서울 벚꽃을 보며
봄꽃이 미쳤다. 대박이 예상되는 최신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전국 동시 개봉’이 돼 버렸다. 보통은 동백이 피고 나서 목련이 꽃을 피우고, 매화·산수유가 꽃을 벌린 다음에야 벚꽃·진달래가 피어난다. 그러고 나서 따뜻한 경남이라 해도 유채는 4월 중순이나 돼야 그 뒤를 이어 꽃이 피어나는데 올해는 이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다 피어나버렸다. 어떤 데는 조팝나무에서조차 꽃이 피어났을 정도고, 벚꽃은 이미 서울에서까지 활짝 피어났다. 서울 벚꽃 3월 개화는 기상 관측 이래 처음이라고까지 한다.…
문학을 하다? 문학을 산다!
우선 다음 일화부터. 선생님이 물었다. “입에 사탕 세 개가 들어 있다. 두 개를 더 넣으면 몇 개지?”어린 소녀가 대답한다. “한 입 가득이요.”이런 해맑은 소녀를 야단치지 않을 부모, 이 순진한 대답을 용납할 학교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시집도 안가고 시집만 줄기차게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 김민정(38)씨가 요즘 세상에서 그 드물다는 ‘희귀 소녀’ 중 한 명이지 싶다. 편집자인 동시에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
규제개혁이 안되는 진짜 이유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규제 개혁에 칼을 뽑아들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규제 총량제를 앞세워 규제와의 전쟁을 벌였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을 가로막는 ‘전봇대’를 뽑겠다며 규제 개혁을 시작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취임과 함께 ‘손톱 밑 가시 뽑기’에 나섰다.역대 정권이 규제 줄이기에 나선 걸로 치면 벌써 17년째다. 그런데 규제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잠시 규제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정부 스스로 집계한 규제 수만 줄었을 뿐 기업들이 느끼기에는…
별그대 열풍과 한·중 관계
중국에서 인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약칭 별그대)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 방송되면 불과 수시간만에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 동영상사이트에 올라가고,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특히 여주인공 전지현이 “눈오는 날에는 치맥(치킨+맥주)인데…”라는 대사를 한 뒤에는 조류독감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역에서 프라이드 치킨이 동이 나는 사태도 빚어졌다. 상하이의 경우 치킨집 앞에 3시간 정도 장사진이 형성되기도 했다. 남주인공 김수현이 즐겨 읽었던 한국 고전소
공보판사님들, 낮은 데로 임하소서
매년 2월달 법관 정기인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기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올 한 해 동안 함께 지낼 공보판사가 누구냐’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의 진행경과 확인을 비롯해 각종 소소한 민원(예를 들어 법정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재판장에게 사전허락을 받아달라, 판결선고 후 보도자료를 배포해달라 등)을 부탁해야 할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공보판사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보판사에게 확인·문의전화를 한다.때문에 어떤 판사가 공보판사로 오느냐
박근혜 대통령과 ‘女兒一言 重千金’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는 옛말이 있다. 남자의 말은 천금처럼 무겁다는 뜻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이른다. 하지만 여풍(女風)이 거센 요즘 세태를 감안하면, ‘여아(女兒)일언 중천금’이라는 말도 필요할 것 같다. 이미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처럼, 우리사회를 짊어질 여성 정치인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수많은 남성 정치인들이 숱한 허언으로 국민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주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1년을 맞아 평가가 한창인데, 보는 이에 따라…
아이와 미술관 가는 길
서울 도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문을 열었으니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좋은 전시가 열릴 때 아이에게 교육 삼아 미술관 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외출하자고 하면 놀이동산에 놀러갈 것으로 기대하는 아이들의 눈에, 그림이나 조각이 재미있을 리는 만무하다. 배우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웃겨주는 어린이 공연은 괜찮다고 치자. 미술 작품은 언제나 말없이 부동자세로 침묵하고 있다.경험상 아이가 공연을 좋아하기 시작하는 때는 대략 다섯 살 후반에서 여섯 살 무렵인 것 같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서너 살 아이들은
是非는 없고 馬主만 있는 수도권 광역단체장 보도
2012년에는 두 가지 선거가 있었다. 하나는 국회의원 선거였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통합진보당 소속이던 손석형 경남도의원이 창원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 위해 도의원을 그만뒀고 민주당 소속 김두관 당시 경남도지사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도지사직을 그만뒀다. 이 때 손·김 두 사람의 ‘중도사퇴’를 두고 지역에서는 비난·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의원직이든 도지사직이든 도중에 그만두는 일은 취임할 때 했던 선서와 어긋날 뿐 아니라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며
김연수에게 소설은 자기 계발일 수도 있다
설 직전에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를 신문에서 시작했다. 문화계 인사의 단골집에서 식사를 나누며 주제를 가진 대화를 나누는 코너다. 첫 상대를 누구로 할지 고민하다가 소설가 김연수를 떠올렸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그가 독백처럼 풀어놓은 고백이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평생 싸워온 게 뭔지 알아? 허세야, 허세. 문학의 허세!”그의 허세론은 만취 다음에 나온 독백이었고, 작가는 곧 의식을 잃었다. 그 다음말을 듣고 싶었다.기자 생활 20년의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보낸 입장에서,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