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쇼 보도와 민주주의 위기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가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1시간씩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지난 3월20일 열린 제1차 회의에 이어 두 번째 생중계다. 중계 방송된 회의 내용은 별게 없었다. 대통령의 장관 야단치기, 참여 패널의 하소연에 대한 적당한 리액션과 웃음…. 잘 준비된, 별 무리 없는, 그리고 특별할 것도 없는 회의였다. 내용은 그랬지만 외양은 다르다. 국정홍보방송 KTV도 이 회의를 생중계 했으니 4개의 TV채널에서 동시에 생중계한 엄청난 회의였다.후일담을 듣자하니 KBS는 회의 전날 밤 늦게야 중계방송을 확정했다고
중도층은 없다
처음으로 조지 레이코프란 인지언어심리학자를 접한 건 2000년도 중후반 쯤이었다. 그가 책에서 제시한 ‘프레임’ 이론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제목으로 지식채널e 한 편을 만들기까지 했다. 물론 ‘프레임’이란 말을 그 책에서 처음 접한 건 아니었다. 정치적 이슈가 어떤 프레임으로 제시되어야 어느 정당에게 유리한지에 대한 류의 기사는 그 이전에도 자주 보곤 했고 특정 정치세력이 해당 이슈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포장하는 일종의 ‘말장난’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
세월호 참사 보도, 위기의 시기? 극복의 호기!
▲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참으로 많은 부문에 자성을 촉구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전원 구조’ 오보는 그 자체로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이자 동시에 절망이었다. 그런데 그 오보가 현장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일선 취재기자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과였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스럽다. ‘총력 수색’ 보도 역시 수용자인 국민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공영방송은 해경 구조대원이 손을 놓고 있다는 현장 인터뷰를 확보하고도 내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선내 승객’까지 구조하기 위해 특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것
교황은 이 땅을 떠나 바티칸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 분이 남긴 발자취가 새록새록 눈에 밟힌다. 가난한 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고자 이를 세례명으로 한 것처럼 그는 이 땅에서 가난한 자, 힘없는 자,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한껏 품었다. 세월호 유가족, 용산참사 희생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위안부 할머니, 밀양과 강정의 주민, 새터민들까지. 갈등의 한복판에서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지만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만나고 껴안았다.…
대통령의 7시간 행방불명과 누락된 의제
일본 보수지 산케이신문이 8월3일자 서울 지국발로 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한국에서 큰 논란이다. 가토 다쓰야 산케이 서울 지국장은 행방불명된 7시간의 ‘사생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8일 “끝까지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장담하고, 검찰은 10일 가토 지국장을 출국금지 시킨 뒤 12일 검찰 출석을 요구했다. 산케이신문은 “문제의 기사는 한국 국회의 질의응답과 조선일보…
로봇 저널리즘과 기자의 일
‘기득권’을 갖고 있던 직업들의 세계에 ‘힘겨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신문을 펴면 변호사회 회비도 못내는 변호사가 많다는 기사에 이어, 하단에 ‘의사 개인파산 신청 전문’이라는 법무법인의 광고까지 볼 수 있는 요즘이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독과점적인 의제설정 기능을 통해 기자가 사회여론을 주도해갔던 언론환경은 인터넷 시대의 도래로 크게 바뀌었다. 매체가 급증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기자보다 영향력이 큰 개인 블로거나 SN
이렇게 세월호는 언론에서 사라지나
월드컵 축구가 끝났다. 방송과 신문들이 온갖 역동적인 화면과 시커멓고 커다란 활자로 고조시켰던 축구 사랑도 애국심도 잦아들고 있다. 세계의 언론은 시청자·독자를 어설픈 축구팬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축구와 관련된 거대한 국제 비즈니스를 가능케 하고 FIFA가 아무런 국가나 국제규약의 견제 없이 기득권을 키워갈 수 있도록 거든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각 나라의 정치권력이 축구를 통해 국민의 가상적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다. 축구 특히 월드컵 축구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가상의 통합과 가상의 공동체&rsquo
세월호, 기억 그리고 감성팔이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태도는 매우 미숙하다. 아니 나 자신부터 기껏해야 언론의 ‘경마 저널리즘’에 비판을 가하는 게 전부였다. 비판을 넘어서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사실 깊이 고민하지 못했던 셈이다. ‘기억하기’에 대해 특히 좀 더 골똘히 생각하게 된 데는 얼마 전 뉴스타파가 미니다큐로 만든 ‘예슬이의 꿈’ 편을 제작한 게 계기였다
문창극 후보 검증한 KBS, 이를 공격하는 언론
중앙일보 출신 문창극 총리 후보가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지만 문 후보로 인해 드러난 언론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언론이 사실에 기반 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언론의 본질적 기능이다. 견해나 보는 관점이 다른 경향성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를 위해 지면을 사유화하거나 진영 엄호를 위해 사실과 진실에 눈 감는 것조차 경향성이라고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되살아난 제 식구 감싸기중앙일보가 자사 출신 문창극씨를 감싸기 위해 나섰다. 공직자 후보에 대한 언론의 검증 보도를 마녀사냥식 여론 재판이라 하면서 청문회에
전교조 법외노조 유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라고 통보한 고용노동부의 처분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논란이다. 법외노조로 본다는 것은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판결을 두고 역사의 시곗바늘이 전교조가 합법화된 1999년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것은 1999년이지만 전교조 설립은 1989년에 있었다. 당시 교직원의 노동조합 설립은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이른바 비합법노조였다. 정부는 전교조에 가입하여 노조활동을 하는 교사들을 해고토록 지침을 내렸고 약 1500여명의 해직교사가 발생했다. 이른바…
총리 지명자와 ‘하나님의 뜻’
미국 연수 중이던 2005년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라이즌과 에릭 리치트블라우가 부시 정부에서 국가안보국(NSA)이 미국인을 무차별적으로 불법 도청한다는 정보를 확보한 뒤 무려 15개월만에 기사화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정보를 묵히면 똥 된다’고 할만큼 속보 경쟁이 너무 치열해 특종할 거리도 며칠 만지작거리다보면 낙종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1년 이상 묵혀도 특종이 되는 미국의 언론 환경은 정말 부러웠다. 그런데 최근 탐사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Glenn Gre
미디어 패러다임의 대이동
언론 환경이 급속히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 때문이다. 지난달 말 발표된 카카오의 다음커뮤니케이션 인수는 이 같은 환경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다. 그건 PC환경에서 유선 인터넷 플랫폼의 ‘원조 강자’였던 다음이 스마트폰 환경에서 모바일 플랫폼의 ‘신생 강자’로 떠오른 카카오에 인수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모바일이 유선 인터넷을 삼킨 것이고, 미디어 환경이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
지방선거 이후의 지역언론
지방 선거도 있고 선거 개표방송도 있는데 정작 우리는 ‘지방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 지방정치는 ‘이번 선거에 누가 출마하려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누가 출마했다’로 이어진 뒤 ‘누가 앞선다’로 넘어가 ‘누가 당선됐다’에서 끝난다. 지역주민의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이것은 수도권을 포함하는 이야기이다. 지방정치를 구성하는 한 축은 지역 언론이다. 지방정치의 더딘 발전은 지역의 이슈와 전개과정을…
‘기레기 논란’이 주는 경고
기레기. 민망한 말이지만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은어다. 예전에도 가끔 인터넷 댓글에서 보곤 했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좀 더 보편(?)화된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자들조차 스스로를 기레기로 지칭하며 세월호 참사 관련 올바른 보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을 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기레기’로 불리는 핵심 이유인 ‘보도자료 받아쓰기’에 대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장과 괴리된 보도의 원
우리의 반성에서 저항은 시작된다
기성세대의 어처구니없는 욕심으로 많은 생명이 덧없이 사라진 세월호 참사는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답지 못한 언론의 민낯을 보는 것도 비극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들이 보여 준 보도 행태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참사 초기 보험금을 논하는 뛰어난(?) 계산 능력, 현장 취재 정보를 무시하고 정부 보도자료를 베끼는 적응 능력, 오보 양산 능력, 보호견으로서 대통령 비판을 방어하고 찬양하는 능력, 항의하는 유족을 모욕하는 대담함, 그리고 이러고도 후안무치하게 자화자찬하는 뻔뻔함. 이들은 공영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