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찾은 나만의 비밀기지
일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1세기 소년’을 아시는지. 우리의 30~40대에게 근과거(近過去)의 여러가지 추억을 소비하게 만든 작품인데, 그 중에는 ‘비밀 기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다. 소년 시절 친구들과 덤불 속에 그들만의 비밀 기지를 만들어놓고, 몰래 모였던 장소. 콧물 묻은 딱지부터 어른 흉내내던 성인 만화까지 온갖 ‘보물’을 숨겨 놨던 곳. ‘나만의 비밀기지’에 대한 유년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한 장면이다. 최근 국립중앙도서관에 갔다가 나만의 비밀기지 만드는 법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정체불명의 일본 비밀기지학회…
도핑 파문과 초저금리의 함정
스포츠계가 ‘도핑(dopping)’ 파문으로 떠들썩하다. 연초부터 ‘마린 보이’ 박태환의 도핑 논란이 국내 스포츠계를 흔들었다. 해외에선 케냐의 ‘마라톤 여제’ 리타 젭투의 금지 약물 투입 소식에 마라톤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계에 도전하며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약물은 치명적 유혹이다.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이 고된 만큼 신체능력을 단기간에 강화시켜 경기력을 높여주는 약물의 유혹은 달콤하다. 하지만 약물은 신체기관 손상, 정신질환, 면역약화 등의 부작용을 수반해 선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경기를 살리기 위한 저금리
요리 열풍과 킨포크, 일상의 여유
먹방, 맛집 열풍에서 요즘은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맛있겠다’라거나 ‘나도 따라 해봐야지’가 아닌 음식을 둘러싼 ‘일상’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모든 음식재료를 자급자족해야 하는 산골마을로 들어간 연예인이 삼시 세 끼를 해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TV에 등장했고, 직접 키운 재료로 소박한 식탁을 차려내는 이효리의 일상은 매번 화제다. 급부상하고 있는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도 고급 레스토랑이나 맛집 ‘인증’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친구들과 함께 먹는 감성 사진이 즐비하다. 한때 각종 식당을 헤매며 맛집 정보에 ‘인증
고토 겐지 기자의 명복을 빌며
또 한명의 저널리스트가 희생됐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난 1일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後藤健二)씨를 참수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이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그런데 이 비극적 사건을 놓고 일본 아베 정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자국민 구출을 명분으로 해외 분쟁에 적극 개입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해외에서 위험에 처한 자국민 구출을 위해 자위대가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세금-복지 논쟁과 언론의 역할
‘13월의 세금폭탄’이라고 불린 ‘연말정산 파동’이 한바탕 회오리를 몰고왔다. 정부가 그동안 겉으론 “증세 불가”를 강조하고서, 실제론 중산층에 대한 증세를 꾀하다가 국민의 분노를 자초했다. 정부여당은 일부 세액공제를 늘리고, 이를 소급적용하는 변칙적 대책을 서둘러 내놓았다.하지만 이젠 임기응변에 그칠게 아니라 그동안 방기해온 근본문제를 다룰 때가 됐다. 바로 복지와 세금 문제다. 일부 언론은 대통령이 ‘증세없는 복지’라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에 더이상 연연해하지 말고, 증세와 복지축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예 ‘무상복지
그들 돈 참 쉽게 벌더라
서초동의 검찰청에 터를 잡고 여러 사건들을 취재하다 보면 간간이 기자인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검찰청에 불려 나와 조사를 받는 유명 인사들을 새벽녘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고 자조할 때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월급쟁이로서 나를 자각할 때는 역시나 ‘거액’의 뇌물을 ‘합법으로’ 받아 챙기는 ‘있는 분’들을 지켜봐야 할 때다.검찰은 최근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수사를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검찰의 핵심 수사 인력이라 할 수 있는 중앙지검 특수1부가 지난해 9월부터 꽤나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사
책 하나로 세상이 바뀌겠는가,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삶을 바꾼다는 게 가능할까. 여러 해 동안 같은 주제로 질문을 던져보고 있다. 책의 효용과 의미에 대해 유보적이거나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세상, 확신에 찬 대답을 듣기는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최근 가장 신념 가득한 어조로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김석희(63)씨다.그는 인도의 간디 예를 들었다. 1904년 간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 인도 지식인이 영국 식민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그…
은행의 배당은 달라야 한다
12월19일 삼성전자가 특별배당금 성격으로 작년 대비 30~50% 배당 증대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공시했다. 현대자동차도 연이어 배당 확대를 예고했다. 이게 신호탄이었다. 대기업들의 배당 확대 선언에 국민은행, 우리은행이 맞장구를 치며 배당 확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이다. 이윤은 주주가 댄 돈에 근로자들의 노동이 더해지면서 발생한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이 급여와 배당이라는 형태로 분배되는 것은 당연하다. 급여는 임직원들에게, 배당은 주주에게 주어지는 대가다. 기업의 이윤은 급여와 배당으로 전부 나가는 것이 아
이케아 그리고 집
한때 우리에게 내 집은 ‘성공’과 ‘노후 대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내 집을 마련해 집들이를 한다는 것은 ‘잔치’였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어느새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빚쟁이’와 같은 말이 됐고, 최근엔 집을 그저 잠시 거주하는 곳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아졌다.한때 투자와 투기를 연상시켰던 ‘집’이란 단어는 이제 ‘스위트 홈’과 더 가깝다. 집을 사기도 어렵고,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2030세대는 그래서 ‘현재의 필요’와 ‘삶의 질’에 주목한다. 머나먼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다가 좌절하기보다는 당장 가까이 있는…
일본 미생(未生)들이 투표를 포기한 이유
14일 끝난 일본 총선에서 아베 정권이 압승했다. 전체 475석 가운데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325석(자민 290석·공명 35석)을 쓸어담았다. 연립여당의 의석이 ‘3분의 2(317석)’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이는 2012년 집권 이후 우경화 노선으로 주변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온 아베 총리가 이제 평화헌법 개헌까지도 밀어불일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대부분의 언론은 제1야당인 민주당이 표심을 끌어당길만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을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故 김기원 교수님을 기리며
진보경제학계의 중진학자인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가 지난 7일 지병으로 향년 61살의 일기로 타계했다. 고인은 생전에 많은 경제 기자들에게 좋은 인터뷰 상대였다. 특히 필자에게는 스승과 같은 분이었다. 김 교수의 타계가 안타까운 것은 단순히 개인적 친분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사회가 그 분의 가르침을 꼭 필요로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논리에 의해 질식하기 일보직전이다. 모든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저열한 편싸움 속에서 해법을 못찾고 표류 중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강조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직성
바르가스 요사, 잉카와 우주인 그리고 인간
3년 전인가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서 노벨 문학상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 피식 웃었다. 이 페루 출신 작가의 치정이랄까, 불륜이 떠올라서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고 올해 초 세상을 떠났던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와의 해프닝이었다. 1976년 멕시코 한 극장에서 마르케스는 요사에게 주먹을 날렸다. 여덟 살 많은 마르케스의 부인을 찾아가 수작을 걸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페루 출장을 다녀왔다. 기자에게는 우선 요사의 나라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역시 잉카 문명과 나스카의 나
왜 그들은 당연히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학창시절 내가 제일 부러웠던 건 ‘어떤 것’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무 꾸중’도 듣지 않던 친구였다. 당연히 해 왔어야 할 숙제를 내지 않았는데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는 친구의 변명에 선생님은 그냥 넘어갔다. 마땅히 했어야 할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시험 성적이 바닥이었는데도 선생님은 친구에게 ‘공부를 하라’고 꾸짖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친구는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았는데 불이익이 전혀 없었다.십여년 시간이 흐른 요즘도 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한숨을 쉴 때가 많다. 물론 그 때처럼 부러운 건 아니다.…
단통법과 복합할부금융
1차선 외길 도로에서 택시 두 대가 맞닥뜨렸다. 멈춰선 택시는 어느 쪽도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미터기 요금은 차곡차곡 올라가고 택시는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양쪽 택시에 탄 승객만 속이 타들어간다. 마침내 두 택시는 서로 조금씩 차선을 벗어나 비켜가기로 했는데 때마침 나타난 교통경찰이 차선을 벗어나는 순간 딱지를 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최근 논란이 된 두 가지 이슈를 빗댄 이야기다. 바로 복합할부금융과 단통법. 내막을 설명하자니 하도 복잡해서 비슷한 상황을 우화로 연출해 보았다.단통법 논란은 이동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가 보조금…
아직도 바라만 보니? 난 예술한다
# 덩그러니 맞닥뜨린 하얀 캔버스. 선을 그렸다 지워가며 바닥이 뚫어질세라 스케치를 하고, 비로소 채색에 들어간다.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색은 하나도 없다. 파란색에 검은색을 조금 섞고 하얀색을 더 섞자, 오묘한 푸른빛 회색을, 흰색에 빨간색 여기에 연한 노란색을 한 방울 더하자,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정도의 따스한 분홍색으로 변신한다. 어디서도 본적 없는 이름도 없는 갖가지 색의 향연을 즐기며 ‘붓질’을 하는 동안은 이른바 ‘멍 때리기’의 연속이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공간에 흐르던 음악 소리가 들리면서 잠시 접어놨던 고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