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2021년 10월 남대문시장에서 손정애씨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납니다. 칼국수 한 그릇과 덤으로 주신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으며 70대 현역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손정애씨 삶의 기록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평생 일했으나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린 사람들, 집안일부터 바깥일까지 쉼 없이 해냈지만 집사람으로만 소개된 사람들, 오늘도 묵묵히 사회 곳곳에서 필수노동을 책임지고 있지만 정확한 직함 대신 아줌마나 할머니, 이모님으로 불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우리
[이달의 기자상] 치킨 공화국의 속살
오늘 치맥할 사람? 저 역시도 심심하면 국민 간식 치킨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이 가장 많아 치킨 공화국이라 불립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들은 코로나19로 배달 주문이 늘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높은 영업이익률 때문인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숫자는 최근 2년간 부쩍 늘었습니다. 빚 때문에 문을 닫았던 자영업자들이, 더 큰 빚을 내서 치킨집을 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입니다.하지만 치킨을 팔아 생긴 수익은, 치킨을 만드는 데 관여한 모든 사람에게 골고
[이달의 기자상] 목포 '옛 동명원' 피해자들의 절규
형제복지원 말고 전남 목포에 동명원이라고 있네요.부산 형제복지원안산 선감학원과 같은 인권유린 시설이 전남에도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인권유린. 현 시대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이지만, 동명원에서는 최근까지 아주 익숙한 단어였습니다.당시 시대를 겪어보지도, 목격하지도 않은 젊은 기자들에게 비극적인 역사를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취재팀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느새 목포를 벗어나 전국으로 흩어진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나는 노력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많은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이달의 기자상] 코로나19 장애인 대책 있나?
오미크론이 퍼지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보도국에서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19에 확진되거나 격리되면 중증 장애인들은 어떻게 하느냐. 특히 시시각각 돌봄을 받아야 하는 이들은 답이 없다. 질병관리청이나 보건소에 문의해도 뾰족한 수를 알려주지 않는다. 중증 장애인이라는 제보자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준엄했다.놀랍고 부끄러웠다. 지역의 감염 상황이나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관한 취재는 여러 차례 했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본 적은 없었다. 문제다, 문제가 아니다를 논하기 전에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
SBS·세계일보 '유력 대선후보 검증 보도', 대선 정국에 큰 파급력
제377회 이달의 기자상은 총 10개 부문에 52편이 출품돼 이 가운데 6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2022년 1월 출품작들 또한 취재 내용이나 방향 등에서 우수한 작품들이 대거 출품됐고 심사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해 수상작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우선 11편이 출품된 취재보도1부문에서는 3월9일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에 대한 검증 보도를 한 SBS의 이재명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의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 보도와 세계일보의 윤석열 캠프 건진법사 고문 활동 보도 2편이 나란히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SBS 보도는 이재명
[이달의 기자상] 윤석열 캠프 '건진법사' 고문 활동
무속인인 건진법사 전모씨가 윤석열 부부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본지가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이 정보를 입수한 것이 벌써 수년 전이다. 이후 전씨가 운영하는 법당의 위치와 사진, 동영상 등을 수소문해 꾸준히 취재 자료를 축적해왔다. 운 좋게 실제 법당에서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를 마주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전씨로부터 직접 윤 후보의 상담 내용을 들은 사람과도 연이 닿았다. 그때만 해도 윤 후보와 전씨의 관계가 사생활의 선을 넘지 않아 기사화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충격적인 소식은 윤 후보 캠프에서 들려왔다. 정체 모
[이달의 기자상] 김혜경씨의 공무원 사적 이용 의혹
출발점은 전직 공무원 A씨의 제보였습니다. 자신이 이재명 경기도지사 시절 5급 공무원 지시를 받아 김혜경씨를 비롯해 도지사 가족을 위한 사적 심부름에 동원된 당사자라는 겁니다. 이미 야당을 중심으로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시작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직접 공식 석상에서 이를 부인한 상황에서 A씨가 건넨 자료들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엄중하다는 대통령 선거 시국, 못 본 척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구하는 후보자와 그 가족에 대한 검증은 언론의 책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의혹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
[이달의 기자상] 공공재개발 '도심복합사업' 문제점
정확하지 않은 정책은 왜곡을 초래합니다. 장관에게는 임기 내에 한 번 발표하고 안 되면 그만일 수 있는 정책일 수 있지만, 정책에 휘말리는 개인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게 하물며 부동산처럼 삶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정책이라면, 더더욱 무게감을 갖고 신중해야 합니다.205만 호 아파트 물량을 확보했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물량대비 이를 지지하는 근거는 한없이 부실했습니다.토지 강제 수용이라는 위헌 요소가 다분한 정책이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습니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정책이었기에 더더욱 정밀해야 했
[이달의 기자상] 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들
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들은 가난한 투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난과 투기. 함께 묶여서 사용되긴 어려운 두 단어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만큼은 달랐습니다. 가난하거나 평범한 사람들마저 투기로 내모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고자 취재를 시작했습니다.한겨레가 1년여 만에 재신설한 탐사기획팀 더 탐사는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취업했습니다. 수사기관에 의해 건조하게 전달되는 기존 언론 보도로는 기획부동산은 왜 없어지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기획부동산 2곳에서 일하며 믿을 건 땅뿐이라는…
[이달의 기자상] 공존: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히어로콘텐츠팀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 5월 출범시킨 조직이다. 동아일보가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취재, 참신한 전달방식 등을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콘텐츠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취재 기간, 주제, 형식, 무엇에도 제한이 없는, 완전한 자유가 기자들에게 주어진다.지난해 8월 모인 4기 팀은 경기 안산시 이주민들을 통해 인구절벽 시대 과연 한국이 이주민과 공존할 준비가 돼 있는가를 질문했다. 인구문제는 한국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손꼽히고, 이주정책은 현 상황에서 내놓을 수 있는…
[이달의 기자상] 전북지방의회 이해충돌 보고서
오얏나무에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왕조를 상징하는 오얏(李) 아래에선 오해 살만한 행동은 무엇이든 피하라는 속담입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선 이 오얏나무가 곳곳에서 자라납니다. 전라북도를 취재권역으로 하는 저희는 전북 지방의원들이 느슨하기만 한 감시망을 틈타 오얏나무 아래에서 벌인 이해충돌 행태를 취재했습니다.취재로 드러난 의원들의 이해충돌은 노골적이었고 동시에 은밀했습니다. 본인 또는 배우자 업체를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공사를 수주하는가 하면, 수억원어치 주식을 들고 버젓이 관련된 의정활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공무원에게 공사…
연합 '수능 출제 오류', 당국의 부실검증 파헤쳐
제376회 이달의 기자상은 당초 총 9개 부문 87편의 출품작 중 8건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번 달에는 취재 접근 방식이나 내용, 방향 등에서 참신하고 우수한 작품들이 대거 출품돼 그 어느 때보다 수상작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의 경우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면에서나 취재과정, 사회적 파급력 등에서 수준 높은 뛰어난 작품들이 많아 심사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했다.취재보도1부문에서는 17편의 출품작 중에서 경합 끝에 연합뉴스의 2022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와 부실검증 의혹 보도와 YTN의 김건
[이달의 기자상]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와 부실검증 의혹
법원이 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정답 취소를 결정한 날, 한 수험생에게 이번 사태를 겪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이 수험생은 잘못된 일을 가만히 넘어가지 않고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또 앞으로 후배 수험생들이 나아진 환경에서 시험을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도 했습니다.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평가원은 문제의 조건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답은 고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은 이제 어른들의 잘못된 결정에 그대로 운명을 맡기지 않습니다. 결과만 도출된다면 과정에서 만나는 오류는 어물
[이달의 기자상] '조선인 강제노역' 사도광산 세계유산 후보 유력
조선인 강제노역 사도광산 세계유산 일본 후보로 유력이라는 기사를 송고하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오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후기를 작성하기 불과 몇 시간 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사도(佐渡) 광산을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유네스코(UNESCO)에 추천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기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후 일본의 행태에 거듭 실망했습니다. 사토 구니(佐藤地) 당시 유네스코 주재 일본…
[이달의 기자상] 시세차익 노린 한일간 암호화폐 환치기 실태
공공이든 민간이든 내부 비리는 꼭꼭 숨긴다. 내부 제보가 없는 한 외부에서 알 길이 없다. 한일 간 암호화폐 환치기 창구로 전락한 NH농협은행이 딱 그랬다.농협은 지난해 5월14일 체크카드 해외 현금자동지급기(ATM) 인출 한도를 카드당 월 2만달러에서 1만달러(약 1197만원)로 제한한다고 공언했다. 김치 프리미엄(한국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높은 현상)을 노린 암호화폐 환치기 우려가 제기돼서다.하지만 한도 축소를 발표한 해당 달부터 농협 체크카드의 일본 ATM 현금인출액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카드당 월평균 인출액이 1억670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