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소외라는 문지방
얼마 전 일이다. 70대 후반의 한 선생님이 나에게 카카오톡 화면을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자동 업데이트 이후 화면 레이아웃 등이 바뀌면서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셨다. 아이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 이해하는 나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몇 번 터치만 하면 되는, 단순하고 사소한 변화. 그러나 선생님은 며칠을 씨름해도 풀 수 없었던 난제. 행사용 플래카드를 손으로 쓰던 시절을 거쳐 PC 통신,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까지 겪은 선생님은 매번 새로운 기술을 적절하게 습득해온 분이다. 능숙하게 어플을 다루는 모습은 나에게 노년층에…
뉴스 만족도, 저널리즘 생존의 핵심 필요조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보고서 ①)에 의하면 모바일 기반의 미디어 이용률 및 이용시간만이 증가추세를 보인다. 텔레비전 이용률(93.1%)이 가장 높긴 했지만 이용시간은 2017년에 비해 10.1% 포인트 줄어든 반면 모바일인터넷(86.7%)과 메신저서비스(81.9%) 이용률이 80%를 넘어섰고 이용시간도 전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둘째, 매일 뉴스를 이용한다는 응답률은 텔레비전(50.5%), 스마트폰인터넷(44.7%), 포털뉴스(40.6%)가 40%를 넘었고, 미디어별로 뉴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는…
불과 글, 기자와 글
뉴미디어로 뉴스의 형태가 바뀌며 신문기자들도 영상을 고민하고,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20여 년 동안 글 쓰는 것으로 먹고살았지만 글이 아닌 무언가 다른 형태로 생각을 내놓는 것에 아직 나는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 해서 딱히 ‘글쓰기’를 놓고 고민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고민’은 대학 시절 일본 적군파 다미야 다카마로가 책에 썼던 것처럼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글쓰기를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고, ‘글쟁이’라든가 ‘글을 쓰는…
‘가짜뉴스 폭식’ 기성언론은 책임 없나
기숙사 룸메이트와 함께 학생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간다. “오늘 메뉴 함박스테이크네.” “선택은 했지만 좀 작지 않을까?” 다른 테이블을 둘러본다. 함박스테이크를 배식받은 학생들의 젓가락은 한식을 택한 친구의 식판을 기웃거린다. 아침을 먹지 않아 점심에 기대를 걸었던 우리 둘은 아쉬움을 안고 교실로 향한다. 방금 식사를 했는데, 여전히 배고프다. 이건 식사가 아니라 요기 수준이다. 학부 졸업하고 1년간 공백기를 보낼 때는 체중이 급격히 불었다. 소속감도 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날마다 공허함과 ‘가짜 배고픔’을 느끼며 자꾸 먹었다. 대학
딥페이크와 미디어
공룡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냐고 물으면 대부분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안다고 답한 사람한테 공룡을 실제로 봤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봤다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수천만 년 전 멸종한 공룡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는데 공룡하면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 대부분은 안다. 그림, 영상, 모형 등 다양한 미디어 형식을 통해 재현된 공룡을 봐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럴듯하게 재현된 공룡만을 보고 있을 뿐 실제 공룡은 보지 못했다. 실제로 본 사람은 없는데 이 재현된 공룡이 공룡 같은지는 누가 판단할까? 발굴된 화석, 비슷한 종의 생김새 등으로 전문 연
게이트키핑 시대의 봄날은 갔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청와대 인사개입’, ‘국채 발행 외압’ 주장은 내용에 앞서 그 형식이 새롭다. ‘미디어의 새 시대’를 예고하는 듯하다. 신 전 사무관이 지난해 12월29일 ‘KTG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한 곳은 유튜브였다. 다음날, ‘적자국채 발행 압력 의혹’을 공개한 곳은 고려대 학생들의 온라인 공간인 ‘고파스’였다.며칠 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해명한 곳은 페이스북이었다.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이 “바이백(buy-back)과 국가채무 비율은 무관하다”며 실무 경험을 토대로 신 전
덜 웃는 새해를 기다리며
일부러 비속어를 연상하도록 발음하는 이들이 넘치던 2018년이 저물고, 드디어 2019년이다. 그러나 새해의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 해를 의미하는 ‘년’은 자주 언어유희인 척, 센스 있는 척 욕설의 동음이의어로 쓰였다.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 ‘돼지X’이라고 낄낄거리는 사람들이 벌써 한트럭이다. 2016년에 장애인 비하를 유머로 소비하던 장면이 아직 선명한데 말이다.새해에는 웃을 일이 더 많기를 바란다. 동시에 더 많은 웃음이 사라지기를 원한다. 후자의 웃음은 차별과 혐오를 기반으로 한 폭력성을 띤다. 휘어진 눈꼬리와…
뉴스 철학 없는 유통업자 알고리즘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검토위원회(이하 검토위원회)는 네이버의 뉴스 알고리즘이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될 게 없다고 결론지었다. 세 가지 대상(뉴스 검색, AiRS 뉴스 추천, 연예·스포츠 기사 추천 서비스)을 네 가지 측면(데이터, 자질 및 알고리즘, 서비스 공개, 전 과정에 걸친 절차)에서 검토한 후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기자간담회 자료를 유심히 읽어보니 뉴스 알고리즘은 포털의 인터넷뉴스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저널리즘 가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유통사업자의 입장만 중시했다. 먼저, 검토위원회는 전산학적 관점에서 알고리즘을…
왜 우리가 민주주의의 적인가
KBS TV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최근 우리 언론의 관행으로 굳어진 ‘정치인 막말 받아쓰기’를 다루었다. 정치적 꼼수가 담긴 말도 그대로, 황당한 막말까지도 그대로 인용해 기사화하는 걸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명명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정치인의 발언은 “취재의 시작점이지 마지막이 아니니” 해당 발언의 당부로 마무리되었다. 정치 관련 보도는 정국 운영과 정책에 대한 여론을 형성한다. 기자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정보 획득과 판단을 돕기 위해 정치인을 만나 취재한다. 그렇다면 기자는 취재 대상이 된 정치인이 어떤 의도에
‘불수능 융단폭격’ 보도 유감
지난달 수능이 끝나자 우리 언론들은 일제히 ‘불수능 비판’ 기사들을 쏟아냈다. “출제자 나와”…역대급 불수능에 수험생들 분개. 불수능을 사교육 부채질로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기사’들도 눈에 보였다. ‘불수능’에 예비 고3도 ‘벌벌’…“사교육만 부추겨”. 불수능이 눈치작전을 불러 올 거라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기사도 있었다. ‘대입은 전략싸움?’…‘불수능’에 치열해진 눈치작전. 대개 눈치작전은 물수능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아닌가. 올해는 외국인의 논평도 활용됐다. 영어권 외국인도 혀 내두른 ‘불수능’…학교수업 무용론도. ‘불수능 융
취약한 사회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전화가 불통이다. IPTV로 즐겨 보던 중국드라마를 못 보게 된 것 정도는 별일 아니지만, 인터넷만 끊긴 게 아니고 전화가 아예 먹통이 된 건 처음이었다. 우리집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뭔가 사고가 났구나 하면서 동네를 서성이다가 3G 연결망이 이어진 곳을 찾아 뉴스를 확인했다. KT 아현지사에 화재가 났다고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정보기술(IT) 사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족 중 한 명이 어느 통신사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이날 먹통 사태에 대해 대뜸 꺼낸 말은 “KT가…
저널리즘 함께 성찰할 공간 필요하다
‘저널리즘 총회(Assises internationales du journalisme)’라는 행사가 있다. ‘저널리즘과 시민권 협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프랑스 저널리즘 분야의 대표적인 연례행사로 2007년 퀄리티 정보의 생산 조건을 규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 수많은 언론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 저널리즘 총회는 저널리즘과 그 실천에 대한 공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언론사, 저널리스트, 시민단체, 저널리즘스쿨 학생들과 교수들, 연구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에게 열려있다. 그 해 선정된 테마를 둘러싼 토론, 저널리즘 실습, 워크
폭력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과 접근
영화 미쓰백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지은(김시아 분)과,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상아(한지민 분)가 교감하고 연대하고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아저씨가 소녀를 구하는 서사가 발에 차이는 세상에서, 상아와 지은이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고도 치열하게 다가가는 미쓰백은 특별하다. (상영은 거의 종료되었으나 VOD 등을 통해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가정폭력은 지은처럼 아동과 양육자 관계 뿐 아니라 배우자 사이, 형제자매 사이, 친족 사이에서도 벌어지며 그 양상은 신체적 폭력, 성폭력, 정서적 학대(폭언이나 가스라이팅), 금전적 통제, 방치
집단적 베껴쓰기 관행 규제해야
2005년 인터넷언론이 신문법상 ‘인터넷신문’으로 명명되어 법적인 지위와 권한 및 의무가 제도화된 이후 인터넷신문의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2017년 12월31일까지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총 6885개에 이른다. 신문법시행령에 의해 인터넷신문은 주간 단위로 새로운 기사를 게재해야 하고 주간 게재 기사 건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자체적으로 생산한 기사로 채워야만 지속적인 발행 요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시행령이 다음의 이유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첫째, ‘사실’과 ‘진실’을 강조하는 객관주의 저널리즘 패러다임
왜 우리는 ‘계란판’이 되는가
최근 언론계에서 ‘계란판’이 화제가 됐다. 계란판(종이난좌)은 신문지로 만든다. 폐지가 아니라 윤전기에서 인쇄를 막 끝낸 신문이 밀봉된 채로 옮겨져 ‘계란판’이 된다. 지구촌 어디에서건 마찬가지다. 신문들의 콘텐츠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내용은 더 세련되고, 글은 더 리드미컬하고, 사진과 그래픽도 나날이 발전했다. 다만 세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시청률 최고의 방송들이면 방송사의 온라인 사이트 역시 최상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잠깐의 기대는 정말 순진했다.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이 대단한 수준의 기술과 노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