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크’ 논란과 공연 관람 매너
‘회전문 돈다’라는 말이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 업계에서 같은 공연을 반복해서 보는 관객을 일컫는 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상반기에 가장 많이 본 뮤지컬은 약 50회차 중 모두 13번을 봤다. 이처럼 특정 공연에 ‘꽂힐 때’를 대비해 공연비로만 쓸 소액 적금을 미리미리 들어두는 편이다. 물론 모든 작품을 이렇게 보는 것도 아니며, 놀랍게도 내가 특별히 다른 관객보다 많이 보는 편도 아니다. 비슷한 질문을 듣곤 한다. ‘같은 공연’을 보는 일이 지겹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는 연극이나 뮤지컬의 특성을 간과한 말이다. 같은 작품이라
야구에 등장한 로봇 심판
포수 뒤에 있는 심판이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한다. 여기까진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 여느 심판과 조금 다르다. 뒷주머니에 아이폰, 귀에는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을 끼고 있다. 그리곤 투구추적 시스템인 트랙맨으로 판정한 내용을 그냥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제휴한 애틀랜틱리그에서 시험 중인 로봇 심판 얘기다.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는 선진적인 제도를 먼저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검증된 제도는 메이저리그에 도입된다. 따라서 메이저리그에 로봇 심판이 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몇 년 전까
‘쑨양 패싱’이 남긴 것
지난달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에선 물 안 보다 물 밖 상황이 더 화제였다. 익히 알려진 ‘쑨양 패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수영 스타 쑨양사 진이 약물 복용 및 도핑 검사 방해 논란에 휩싸이고도 버젓이 세계선수권에 나와 메달 따는 모습을 다른 나라 선수들이 용납하지 않았다. 일부는 쑨양과 시상대에 같이 서길 거부했고, 기자회견에서 “쑨양을 존중할 이유가 없다”고 공개 비판한 선수들이 숱했다. 돌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국제수영연맹(FINA)의 경고도 소용 없었다. 선수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말했
‘탈일본’의 시작은 대-중소기업 상생 경영
수년 전 삼성 미래전략실 소속 사장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연간 영업이익 50조원 중에서 10조원 정도를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에 지원하면 어떻겠느냐고 질문했다. 이익이 40조원으로 줄어도 여전히 재무적 성과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대신 협력업체를 쥐어짠다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고, 협력업체의 혁신역량이 강화되면 삼성전자의 경쟁력도 높아져 시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지않겠느냐는 취지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비웃음이었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과도한…
한·일 외교 충돌에서 승리하려면
2019년 7월4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 안보와 관련한 수출 관리 조정이라고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보복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일 관계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중대 도발이다. 그런데, 우리 대응을 보면 효과적이지 않은 양태가 노출되면서 우려감도 적지 않다. 몇 가지만 적어보자. 1. 이번 외교 충돌에서 적군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부에서 아베 총리를 제쳐놓고 문재인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무능 논란은 적전 분열을 초래하고 아베
한·일 무역전쟁에 볼모로 잡힌 경제
‘기업 2만2828개 부도(1998년 기준), 실업자 157만명(1999년), 자살자 8569명(1998년)...’ 국가를 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비극 ‘IMF 환란’. 그 배경에 외교 문제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O-157 병원균이 검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클린턴 대통령과 정면충돌했다. 한·일 간 마찰도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발언하면서다. 외환보유고 고갈 직전 한국의 지원 요청에 미국 월가와 일본 대장성이 등을 돌린 배후엔 이런 외교적 갈등 상황
후배 좀 모시고 살면 안 됩니까
검찰 내부에서 차기 검찰총장 지명은 용기있는 퇴진, 이른바 ‘용퇴(勇退)’의 신호탄으로 불린다. 검찰에선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나 후배가 자신의 윗자리를 차지하거나 총장에 임명될 경우 스스로 조직에서 나가는 관행이 있다. 언론과 검찰 내부에선 이를 ‘용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왔다. 용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남 △후진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스스로 관직 따위에서 물러남. 검사들이 받아들이는 용퇴의 의미는 후자다.용퇴 관행은 뿌리가 깊다. 오는 7월 24일 임기만료로 퇴임을 앞둔 문
시대를 읽은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
아동복을 파는 백화점 매장 안에는 ‘어린이용’ 화장대가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여덟 살 아이가 관심을 보이자 직원은 무해한 성분을 강조하며 발라보라고 권유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의 옷을 애써 고르고 있던 나는 벌컥 화를 낼 뻔했다. 어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학교를 거치며 성역할을 빠르게 사회화했다. ‘빌어먹을 핑크’와 조악한 레이스는 거스를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 조카가 둘 있다. 모두 여자 아이다. 집안에서 아무리 애써도 집밖에서는 무용할 때가 많았다. 성별 고정관념과 그것이 수반하는 문제를 일
‘딥페이크’와 플랫폼의 책임 공방
2016년 미국 대선의 이슈는 ‘가짜 뉴스(fake news)’였다. 언론사 뉴스를 가장한 허위 뉴스가 생각보다 많이 유포된 때문이었다. 선거가 끝난 이후 구글, 페이스북 등은 연이어 가짜뉴스 대책을 내놨다.4년 만에 치러지는 내년 미국 대선에선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 ‘페이크 뉴스’에서 한 발 더 나간 ‘딥페이크’가 바로 그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인 딥러닝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인 딥페이크는 교묘하게 조작된 가짜 영상을 의미하는 말이다. 인공지능 기술 덕분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영상을 손쉽게 만들어낼…
‘친일파’ 없는 야구
‘일본과 친하게 지냄.’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친일(親日)이다. 작년 일본에 간 한국인이 약 754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걸 보면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이 꽤 많을텐데, 뉴스엔 반일(反日)이 절정이다. 수십년 불러온 교가와 동네 이름, 도로명 등이 하루아침에 친일 낙인으로 사라질 처지라고 한다. 경기도 학교에선 일본산 비품에 ‘전범(戰犯)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스티커가 붙을 뻔했다. 최근엔 동요 ‘우리집에 왜 왔니’가 일제강점기 위안부 인신매매와 연관있으니 금지해야한다는 학계 뉴스가 나왔다.이런 논리라면 연간 관중 8
‘1등 삼성’과 ‘불법 삼성’의 기괴한 조합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가 떠들썩하다. 언론은 ‘100년 한국 영화사의 쾌거’라고 대서특필했다. 봉 감독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특히 송강호는 봉 감독이 만든 8편의 장편영화 중 절반에서 주연을 맡아, 그의 ‘페르소나’(분신)라고 불릴 정도다. 봉준호 연출-송강호 주연의 첫 영화는 ‘살인의 추억’(2003년)이다. 살인이라는 섬뜩한 단어와 추억이라는 아련한 단어의 묘한 조합이 눈길을 끈 작품이다.요즘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 중인 삼성을 바라보며 ‘삼성의 추억’
한국은 언제 촉진자가 되었나?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평화 촉진 외교가 전개되고 있지만, 한국 정부 역할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하고 있다. 중재자, 촉진자, 당사자 등등의 용어가 나오고 있는데, 이들 용어는 일반적인 의미도 표현하고 있지만, 지난 30년 동안 북핵 문제 역사에서 축적된 맥락도 담고 있다.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이 채택되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 당사국은 남과 북이었다. 1993년 3월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당시 김영삼 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 대화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변화가 발생했
경기 침체가 언론 탓이라고?
한국 경제성장률이 지난 1분기 -0.3%로 곤두박질쳤다. 이번 정부 들어 분기 기준 두 번째 역성장이다. 앞서 2017년 4분기에도 -0.2%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최근 ‘문재인 정부 2년 국정 성과’를 소개하며 “소득주도 성장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평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경제가 개선되고 있다는 지표가 많은데 부각이 안 되고 있다”며 청와대에 ‘좋은 지표 알리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국이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에 가입하고, 지난해 경제성
A검사의 2주기…
“나 너무 힘든데 어쩌지. 공황장애. 장기 사건들이 많은데 전임 검사가 38기라 사건이 엄청 빡빡한데 장기들이 쌓이다 보니 욕먹고 처리할려고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잘 안되고 피의자 수십명씩 달려있고 잘 모르겠고 이런 사건들이 천지라 욕들어먹으니 더 못하겠고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힘들어 진짜”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오늘은 자고 일어났는데 귀에서 피가 많이 난다” “살려줘. 잠도 잘 못잠 계속 깨고” “슬퍼 사는게” “자살하고 싶어”시계를 2016년 5월19일로 되돌려본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소속 A검사는 이날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
스포일러 당하지 않고 영화 보기
스포일러에 관대한 편이다. 급한 성격 탓이다. 소설을 읽을 때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면 마지막장을 확인한다. 결론을 알고 읽는 소설이야말로 정말 재미있다. 예상했던 결말이라면 스스로에게 감탄하고,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이 결말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책을 밀고 나간다. 서효인 시인 역시 나와 비슷한 독서관을 갖고 있어서 반가웠다. “나는 소설에서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결말을 향하는 플롯의 걸음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 가고, 2018)영화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