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 보여준 '산복빨래방'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에 있는 호천마을에 가면 돈 대신 이야기를 세탁비로 받는 특이한 빨래방이 있다. 산복빨래방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불, 패딩, 담요 등 빨랫감 말고도 이야기보따리를 한가득 안고 이곳을 찾는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어르신들은 부산 근현대사를 품어온 산복도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다. 유튜브를 통해 산복빨래방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지난 5월 초 부산일보 디지털미디어부 2030팀은 산복도로에 빨래방을 열었다. 과거 기사에도, 책에도 없는 산복도로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고 한
내실 다져야 할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
지난 5월 취임과 함께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질의응답(도어스테핑)은 반갑고도 신선한 조치였다. 대통령 발언은 그 어떤 취재원 발언보다 뉴스 가치가 크지만 지금까지 이를 직접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언론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은 기자회견이 사실상 유일했는데 질문자, 질문 개수, 질문 순서 등이 미리 정해져 있거나, 이런 제약이 없다고 해도 연례행사 정도로 횟수가 적어 국민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점에서 비록 5분 안팎의 짧은 시간이라 해도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두 달
저널리즘에 '용어 감수성' 필요한 시대
퀴즈 하나. 다음 중 로 vs 웨이드의 로가 가리키는 것은? ①법이라는 뜻의 로(law) ②날 것 그대로라는 의미의 로(raw) ③해당 소송의 변호사 성(姓) ④해당 소송의 원고 성(姓) ⑤모르겠다.답은 ④번이다. 로 vs 웨이드 판례는 1973년 제기된 소송에서 유래한다. 당시 낙태 또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위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쓴 이름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이었다. 신분 노출을 꺼려 가명을 쓴 이 여성의 본명은 노마 맥코비였다. 웨이드는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에서 유래했다. 연방대법원이 제인 로의 손을 들
사주를 위해 프레스센터 재건축 띄우나
기우가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인수를 시도할 때부터, 대주주가 됐을 때, 특별취재팀의 호반건설그룹 대해부 시리즈가 일괄 삭제됐을 때도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당부였다.서울신문은 호반에 인수되기 전, 2년에 걸쳐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늘려 완전한 독립언론을 지키려 했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결정을 가볍게 받아들이지도, 앞날을 섣불리 예단하지도 않았다. 언론 환경은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하고, 시대 적응을 위한 고민만 하기에도 벅차다. 쉬이 흔들릴 118년의 역사도 아니기에 건설 사주는 경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 묵인해선 안 된다
어떤 종류의 행위를 하게 되면 높은 확률로 원색적인 욕설을 듣거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대다수는 그 행동을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비록 그 행동이 옳고 정당하며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도 말이다.비슷한 일들이 요즘 언론계에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정인을 비판하거나 특정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쓸 경우 기자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신상명세를 낱낱이 털어 놀림감으로 삼는 것이다. 댓글로 지독한 욕설이 쏟아지는 일은 덤이다. 가해자들의 마음을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임금피크제, 뉴스룸 인력배치 논의로 확대하자
대법원 임금피크제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에 노동계에서는 임금피크제 폐지 요구가 나온다. 산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며 줄소송 우려도 나온다. 언론계에서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일부 언론사 노조에서는 임금피크제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년유지형에 국한되긴 했지만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해당 제도의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대응에 나서고, 노조가 이를
풀뿌리 민주주의 외면한 지방선거 보도
광역기초자치단체장, 의원과 교육감을 선출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6월1일 치러진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이 끝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열리고 7석의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동시에 치러져 마치 대선 연장전 같은 분위기다. 역대 최소인 0.73%P 차이로 당락이 갈린 대선 민심을 반영하듯 이번 지방선거의 사전투표 투표율도 20.62%로 역대 최고였다. 거대 양당이 각각 국정 안정론과 정권 견제론을 내세우며 이번 선거를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정국 주도권 확보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점에서 정치권도 총력전을 폈다.행정부와 입법부
차별금지법 제정, 언제까지 미룰텐가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가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24일로 44일째를 맞았다. 닷새 전까지 함께 단식을 해오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 공동대표가 위급해 병원으로 이송된 뒤 차별하지 말자는 법을 만드는데 사람이 굶다 쓰러져야 할 일입니까라고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지 15년째 한발도 떼지 못한 데엔 정치권 못지않게 언론의 책임이 크다. 재계와 보수개신교 단체들의 반대에 부닥쳐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단식 한 달 간 차별금
출근길 언론과 문답이 '쇼통'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나누는 장면은 낯설지만 신선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과 12일 연이틀 용산구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주고받았다. 13일엔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실을 방문해 출입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날 한 기자가 아침 (출근길에) 자연스러운 질의응답은 괜찮나라고 묻자 아 뭐 좋습니다라고 했고, 계속 질문해도 되나라고 하자 해달라고 답했다.출근길 문답은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같은 건물에 배치되면서 생긴 풍경이다. 과거 청와대는 대통령이 일하는 본관과 기자실이 분리돼 있어 대
검증 보도에 고소장 들이민 장관 후보자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지난달 6일 제66회 신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다고 했다. 언론의 쓴소리도 경청하겠다는 대통령의 말과 달리, 그가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은 언론의 검증 보도를 소송으로 압박하고 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23일 한겨레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한겨레 기자 3명과 보도책임자를 출판물에 의한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 더는 미뤄선 안 된다
출근 저지, 사장 퇴진운동, 제작거부.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 사장 대부분이 통과의례처럼 겪은 일이다. 민주화 이후 거대 정당 간 정치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권력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종속됐던 공영방송의 씁쓸한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KBS, MBC, EBS와 같은 공영방송은 예외 없이 정권에 따라 편향보도 시비에 휘말렸다. 공정하고 다양한 가치를 구현해 민주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공영방송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공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선 조직 구성원들이 온 힘을 모아도 부족한데 내부 분열로
'언론과의 소통' 부족 아쉬운 문 대통령의 5년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다른 누구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일부다. 5년 전 봄, 문 대통령의 이 육성을 들으며 기자들의 마음은 뛰었다. 주요 사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물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 본인의 말처럼, 소통하는 대통령을 드디어 우리도 보게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없다
배우 윤여정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코다의 농아인 배우 코처를 호명하며 수어로 축하하고, 코처가 수어로 소감을 밝힐 수 있게 트로피를 대신 받아들고 배려한 모습이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도 두 손을 반짝이는 수어 박수를 보내며 감동을 끌어냈다. 그즈음 국내에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거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며 장애인들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고 쏘아붙이자,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장
세월호 8년,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
여덟 번째 봄이다. 전남 진도 인근 참사 해역과 목포 신항, 경기 안산 등지에서 시민들은 세월호 8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했다. 현장을 찾은 취재기자들의 수는 매년 줄었고, 기사 내용은 간결하며 짧아졌다.시의성을 따지는 언론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과 중요도는 반비례한다지만, 우리는 8년 전 세월호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곳에서 어떤 보도를 했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전원 구조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 정부 발표를 받아 쓰는 속보 경쟁에 집단 오보를 냈던 언론의 관행은 얼마나 개선됐는가. 당시 실종자와 유가족들이 언론을
기자 직무 스트레스,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현직기자 5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8.7%에 해당하는 428명이 근무 중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한다. 근무 중 어떤 상황이 트라우마를 일으켰느냐고 묻자 취재 과정뿐 아니라 기사 작성과 보도, 보도 이후 댓글이메일 등 독자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기자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직무 전반이 총망라됐다. 동료 기자 10명 중 8명이, 기자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통상의 업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정신 건강의 위기를 경험했다는 뜻이다.새삼스럽지만 기자는 업무 강도가 높고 직무 스트레스도 많은 직업이다. 취재보도라는 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