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끊기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 | 입력
2005.06.01 12: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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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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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공화국’의 싹쓸이가 점입가경이다. 자본력과 사회적 신임을 양 날개로 한 사회 인재 쌍끌이가 한창이다. 방송사의 간판 기자, 신문사의 민완기자, 검찰의 주요 포스트 보직검사, 법원의 판사 모두가 삼성이라는 블랙홀의 먹이가 되고 있다. 먹이가 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곶감 빼먹듯 빼내지는 인사들과 함께 그물망 같은 정보망과 고급 정보도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인재난, 정보력에 허덕이며 아마추어리즘으로 욕바가지를 먹는 참여정부와 비교해보면 삼성이야말로 제대로 된 엔진을 단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가히 허세는 아닌 듯 하다.
삼성의 게걸스러움은 두 가지의 징후를 드러낸다. 첫 번째는 한국의 전문직 종사자의 위기 징후다. 이미 위기는 오래 전에 왔으나 이번 위기는 총체적이라는 점에서 그 전과는 다른 위기 양상을 띤다. 개인이나, 소속의 이익이 아닌 길드적 이념을 위해 직업 수행을 하는 전문직의 개념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사회를 향해 정의를 주창(to advocate)하고 변호해야 하는 집단이 전통적 길드 규범보다는 스스로 소속과 보스의 이익을 택하는 직업 수행으로 이전하는 긴 행렬을 만들고 있음은 위기 이상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들 개인이 망가져서가 아니라 그들이 함께 만들었던 전문직 집단 문화가 동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미 그들 동료들도 크게 놀라지도 않고 그들의 엑소더스에 대해서 말도 아끼고 있다. 선택의 문제로 치부하며 사건 자체를 축소하려는 표정들도 역력하다. 그럼으로써 선출되지 않은 자본 권력에 대해 쉽게 손사래를 칠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다. 고려대 사건에 보여준 언론들의 태도, 부끄럼 없이 캐리비언 베이의 개장 소식을 경제면 한 가운데 버젓이 올리는 집단적 파렴치함, 삼성전자야 말로 황우석과 함께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릴 동력이라며 신문 전면을 CEO의 얼굴로 도배하는 일이 동요의 증거들이다.
두 번째 징후는 삼성의 위기다. 삼성이 더 크게 은폐하고, 덮어두어야 할 일이 없다면 이같이 대대적인 선단을 만들어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적극적인 공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읽힌다. 삼성의 가슴에는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수세적인 강박이 도사리고 있어 보인다. ‘삼성 공화국’이 그 부끄러움, 파렴치함과 절망을 모두 끌어안음으로써 무엇을 이루고자 할까?
모르긴 해도 삼성은 때 묻은 인풋을 끌어안아 매끈한 자본의 이미지라는 아웃풋 뽑기를 욕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욕망일 뿐이다. 결코 사회를 매끈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정의를 빛나게 하려는 사회적 욕망과는 일치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싹쓸이, 쌍끌이, 블랙홀은 위태위태하거니와 무언가 큰 위험을 맞은 듯한 징후로 밖에 읽히지 않는 것이다.
삼성과 전문직 종사자들간 불륜은 사회를 망가뜨리는 거역적인 힘이 될 공산이 크다. 전문직 조직을 동요케 해 환경감시를 소홀히 하게 만들 뿐 아니라, 유망한 기업이 사회적 해악의 근원지가 되어 오히려 사회적 공신력을 잃어버리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불륜의 고리는 사회적 급소일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급소 제거의 방법론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길드적 이념들을 꺼내드는 수밖에 없다. 조직을 모시지 않고, 보스를 두지 않으며 끊임없이 사회적 정의를 주창해야 한다는 길드적 이념에 충실하자고 외치는 수밖에 없다. 불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래도 사회적 정의라는 이념을 입에 올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