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이유

[이슈 인사이드 | 젠더] 남지원 경향신문 젠더데스크

저출산 대책과 제도만 잘 갖춘다고 출산율이 높아질까. 현실에선 제도의 시행 자체보다 타인의 선의가 더 많은 것을 좌우한다. 사진은 2023년 경기도 안양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뉴시스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저출생’이라고 바꿔 부르자는 흐름이 있다. 인구 감소의 원인과 책임을 ‘출산하지 않는 여성’에만 떠넘기지 말자는 취지다.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대안어를 쓰자는 주장은 2016년 행정자치부가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지도에 분홍색으로 색칠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었다가 거센 반발을 산 사건을 계기로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주장은 사회적 공감을 얻으며 일부 정책 용어와 공식 용어가 저출산에서 저출생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저출생이라는 용어가 인구 감소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출산하기를 선택한 결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청년들은 왜 출산을 선택하지 못하거나 선택하지 않을까. 이 각자도생 사회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다 어찌어찌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치자. 현대사회의 풀타임 노동자에게 가장 값비싼 자원은 시간인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 또한 시간이다. 제도가 부족해서 시간이 없을까?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최장 1년6개월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국가는 흔치 않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과 무상보육, 긴급돌봄지원까지 제도는 차고 넘치게 갖췄다. 문제는 국가가 제도만 만들어 놓고 노동자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데 있다.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조사에서 응답자의 46.7%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 65.9%가 출산휴가를, 70.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했다.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제도 접근성이 천차만별인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합쳐지면 어찌어찌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도 현실의 벽을 깨닫고 돌아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공동체인 부부에게 합리적인 선택은 소득이 적은 쪽이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이다. 일을 아예 그만둬 경력 단절을 겪기도 하고, 단축근무와 휴직과 연차를 반복하면서 직장 내부경쟁에서 밀리기도 한다. 성별 임금 격차가 30%대에 달하는 데다 여성이 돌봄과 양육을 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공고한 현실에서 커리어를 포기하는 쪽은 주로 여성이다. 요컨대 여성이 출산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출산에 인생과 커리어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400조원을 들였다는 저출산 대책이 모두 실패한 까닭은 그간 인구 대책을 총괄했던 정책 결정자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돈 줄 테니 애 낳아라”만 반복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지원 경향신문 젠더데스크.

정부가 제도만 던져놓고 알아서 사용하라고 하는 동안 어린아이를 기르는 노동자들은 주변의 선의에 기대서 버틴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해 일찍 퇴근하면 남은 일은 다른 동료들이 대신 나눠맡아 주길. 나이 드신 부모님이 흔쾌히 아이를 봐주시거나, 좋은 아이 돌보미를 모실 수 있게 되길. 어린이집 선생님이 퇴근을 기다려주길. 육아휴직을 써도 싫은 소리 하지 않는 착한 사장을 만나길. 대체로 우리 주변에는 선한 이웃이 살지만, 개인의 선의에만 의지해서는 일상을 안정적으로 굴릴 수가 없다. 곳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자가, 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주가 갈등한다. 이건 사람들이 충분히 선하지 않아서일까? 여기까지가 얼마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했다는 “정부는 지쳐간다. 아이를 데리고 전월세를 살면 임대업자가 비용을 좀 깎아주면 안 될까. 그런 선한 사마리안 같은 분들은 왜 나타나지 않느냐”는 말을 듣고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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