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오늘은 ‘영화’ 아니, ‘영화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프랑스 감독 피에르 모렐이 연출하고, 영국 배우 리암 니슨이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 <테이큰>은 ‘재밌는’ 영화이긴 하다.
전직 특수부대원인 아버지가 위험에 빠진 자식을 찾으러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수만 리 먼 길을 날아가 인신매매와 마약 거래를 죄책감 없이 일삼는 악당 수십 명을 처치하고 철부지 딸을 구해낸다는 스토리는 간명하고, 결말 역시 누구나 짐작이 가능하다.
<테이큰> 역시 대부분의 액션영화가 보여주는 일반적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포함한 후속 시리즈가 한국에서 히트를 치면서 ‘재미있을 수 없는’ 선입견 하나가 생겨버렸다.
리암 니슨과 주먹질을 주고받거나 총격을 벌이는 이들의 국적은 알바니아. <테이큰>에 등장하는 ‘알바니아 마피아’는 10대 소녀에게 불법 약물을 주사해 이상성욕자(異常性慾者)에게 팔아넘기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파렴치한들이다.
핍진성 있는 영화는 때론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영화 속 장면이 실제로도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러니까, ‘혹시 나도 파리나 런던으로 혼자 여행을 가면 알바니아 마피아에게 납치되는 게 아닐까’라는 실로 영화 같은 상상을 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게 생겨난다는 이야기.
그래서였을 것이다. 여행지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와 남부 소읍 베라트를 선택한 나를 걱정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모두 <테이큰>을 본 친구나 선후배였다.
“야, 알바니아는 무서운 마피아가 득실거리는 나라 아냐? 왜 하필 거길 가려고?”
웃으면서 그들의 걱정과 의문에 이렇게 답해줬다.
“마피아건 야쿠자건 조직폭력배건 뭔가 해 먹을 게 있는 도시에 사는 거야. 아직 소달구지가 다니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마피아는 무슨…. 알바니아 악당들은 이미 모두 파리, 런던, 뉴욕으로 떠났을걸. 거길 가야 걔네들이 원하는 검은 뭉칫돈이 생길 테니까.”
다행히도 내 호언장담은 틀리지 않았다. 일주일 남짓 알바니아 여행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톨릭이 대세인 유럽 대륙에 위치했음에도 독특하게 알바니아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무슬림이다. 비교적 현대화된 티라나와 시골 마을 정취가 그득한 베라트 모두에서 여러 개의 모스크를 봤고, 이슬람교도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adhan)’을 들었다.
슬프고 내밀한 중얼거림처럼 느껴지는 아잔이 어렴풋이 들려온 베라트의 한적한 식당. 눈을 들어 산 아래를 보니 석회가 섞인 탁한 빛깔의 강물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만이 소리를 낼 뿐, 사위가 그림 속처럼 적요했다. 한국의 경상도나 전라도 깡촌 같은 풍광이라 더없이 익숙하고 정겨웠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걸 사양하지 않는 편이지만 ‘양의 뇌(腦)’로 만들었다는 요리는 차마 주문하지 못하고, 소고기에 알바니아 스타일의 양념을 더한 스테이크 비슷한 걸(?) 시켰다. 곁들여 먹은 양배추 초절임이 입에 맞았다.
식당 주인장이 ‘꿀팁’까지 하나 줬다.
“저녁 5시쯤 되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마을 광장으로 나와 이야기도 나누고 간식도 먹어. 당신도 와서 함께 즐기지 그래.”
그 말은 사실이었다. 괴괴한 정적이 감돌던 베라트가 저물 무렵이 되자 장터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저 많은 사람들이 낮엔 다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라는 혼잣말을 할 정도였다. 아마도 그건 ‘유럽식 열린 광장 문화’가 아니었을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라트 주민들 중 마피아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낯선 동양인 여행자에게 초콜릿을 먹어보라 권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제 나라 민요를 흥얼거렸을 뿐.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어르신의 인자한 웃음과 열두어 살 소녀들의 고운 노랫소리가 근사한 하모니를 이루던 알바니아 베라트의 저녁 풍경.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쯤 그 영화 같은 시간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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