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임기를 9개월 남겨둔 경남 고성군의회 의원 10명이 대만과 홍콩, 마카오로 외유성 출장을 떠나려 하자, 지역 시민단체인 고성희망연대는 삭발식까지 하며 해외 출장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럼에도 고성군의원들은 일정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외 출장을 강행했습니다. 당시 다른 지방의회 의원들도 임기를 불과 1년도 남겨두지 않고 잇따라 해외 출장을 떠나면서 외유성 논란이 일었습니다. 관광지 방문이 대부분이었고, 출장을 다녀온 뒤 임기 내 정책 개발을 하기 어려웠는데도 지방의원들은 잇따라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을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 공무원들은 어떨까?’
◇해외 출장 280여 건… 너도나도 ‘유럽행’
코로나 팬데믹 이후인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상남도와 경남의 18개 시·군 소속 공무원들이 다녀온 배낭 연수 개념의 해외 출장 결과 보고서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우선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등록된 보고서들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이 작성한 결과 보고서는 이 시스템에서 검색되지 않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보고서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확인한 각 지자체의 해외 출장은 모두 280여 건.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거쳐 해당 출장들에 집행된 예산과 사전 심의서 등을 추가로 확보했습니다. 이렇게 자료를 모두 모아봤더니, 경남의 공무원들은 3년 동안 41개 국가를 449번 방문했습니다. 또 스페인을 44차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30여 차례씩 방문하는 등 대부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출장 목적 대부분은 ‘관광 정책 개발’. 관광지만 방문하고, 현지 관계자는 만나지 않은 출장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관광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마라톤 완주·부부동반 출장… 허위 보고도
해외 출장 결과 보고서를 일일이 하나씩 다 확인해 보니 단순 관광 일정이 포함된 것보다 더 황당한 사례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밀양시 공무원들의 해외 출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밀양시 공무원 3명은 지난해 마라톤대회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마라톤 기획자 등 전문가 면담조차 하지 않고, 단순히 파리 마라톤 대회에 선수로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민원과 건설, 주민센터 소속인 이들은 6박8일의 일정 동안 마라톤 대회 참가를 전후로 관광지와 재즈클럽 등만 방문했습니다. 다른 밀양시 공무원 2명은 육아 친화 정책을 발굴하겠다며, 8박10일 동안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을 다녀왔습니다.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의 일정표를 보니, 육아 친화 정책과 관련 없는 도심지 달리기와 관광지 방문이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부부 사이였습니다. 사실상 부부끼리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겁니다. 적어도 세금을 지원받아 출장을 갔다면 전문가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
이뿐만 아니라 창녕군 공무원들은 방문하기로 했던 기관을 가지 않고, 현지 기관들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복사해 보고서에 붙여넣기도 했습니다. 방문하기로 약속했던 지역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숙박비를 일정 금액 이하로 지원받으면 숙박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허점을 노린 겁니다. 칼럼이나 언론 기고문을 그대로 베껴 보고서에 붙여넣은 사례도 수두룩했습니다. 보고서의 문장과 사진을 복사해 구글에서 검색하면 같은 글과 사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외국의 선진 사례를 배워 지역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만들겠다는 해외 출장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사례들이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이 사례들을 중심으로 해당 지자체에 사실관계와 입장을 물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하는 곳도, 바로 잘못을 인정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취재를 마무리할 때쯤, 이 사례들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보도 영상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면 그만큼 파급력도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7년 만에 다시 취재… 차별화 노력
이런 고민은 7년 전 보도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사실 2019년에도 지방 공무원들의 외유성 출장을 고발하는 보도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관광지 방문 일정으로 빼곡했던 외유성 출장을 고발하는 기획 보도를 했지만, 해외 출장 결과보고서와 보고서에 담긴 사진만 보여줄 수밖에 없어 파급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영상 구성에 굉장히 신경을 썼습니다.
우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지난해 파리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유튜버들의 영상을 찾았습니다. 파리 마라톤은 세계적인 행사여서 유튜브에 밀양시 공무원들이 촬영된 영상이 무조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영상을 살펴보던 중 마침 한 유튜버가 밀양시 공무원들과 함께 새벽에 에펠탑 인근을 달리며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찾았습니다.
이들은 국제 마라톤에 참가하는 관광 상품인 ‘런투어’를 함께 다녀왔던 겁니다. 또 파리 마라톤 출장을 떠났던 밀양시 공무원이 운영하는 SNS를 찾아내 파리 재즈클럽에서 춤추는 영상과 해당 출장을 ‘여행’이라고 표현한 후기도 여러 차례의 검색 끝에 찾아냈습니다. 세금을 지원받는 해외 출장을 ‘공무’가 아닌 ‘복지’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영상을 찾을 수 없는 출장들도 회의실에서 TV 화면에 보고서를 띄워 놓고 분석하는 모습이나, 인공지능(AI)에게 보고서의 표절률을 물어보는 과정을 촬영해 보도를 보는 시청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끝까지 지켜봐야 할 ‘개선 약속’
영상 구성에 공을 들인 덕분인지 첫 보도부터 파급력이 컸습니다. 파리 마라톤과 부부 동반 해외 출장을 고발한 첫 보도는 유튜브 등에서 조회수 400만 회를 넘었습니다. 파급력이 컸던 만큼 지적을 받은 지자체들이 개선책을 내놓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밀양시는 외유성 출장을 없애기 위해 심사와 교육을 강화하는 등 해외 출장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창녕군도 배낭 연수 개념의 해외 출장 폐지까지 검토했습니다. 경상남도와 창원시도 정책을 베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표절 검사 프로그램 도입 등 표절 방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이와 함께 경상남도 감사위원회는 각 시·군의 해외 출장에 대한 감사 착수를 검토했습니다. 7년 전의 기획 보도를 이제야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자체들이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해서 취재가 끝난 건 아닙니다. 실제로 개선책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7년 뒤에도 보도해달라”는 누군가의 댓글처럼 공무원들이 세금으로 외유성 출장을 가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취재해야 하는 것도 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외유성 출장을 고발하는 보도가 진부할지라도 누군가가 낸 소중한 세금을 엉터리로 쓰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N년 뒤에도 다시 공무원들에게 묻겠습니다.
“유럽, 왜 가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