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부 언론 보도로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실태가 세상에 드러났음에도 정치권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결국 관심의 영역 바깥에서 20대 청년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목숨을 잃은 이유는 1년간 언론이 지적한,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 때문이었다. 1년 넘게 이 문제를 취재해온 기자들은 “미리 대응했다면 아까운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연히 본 실종자 안내, ‘뭔가 있다’ 직감
지난해 11월 첫 보도 당시 한국경제신문 ‘0.5년 차’ 신입이었던 김다빈 기자는 SNS에서 우연히 캄보디아 실종자 안내 포스터를 보고 취재를 시작했다. ‘범죄와 관련될 수 있다’는 사건기자의 촉이었다. 실종자의 행방을 쫓아 캄보디아 관련 텔레그램 채널에 잠입했고, 채팅방 운영자들에게 연락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결국 실종된 피해자가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감금돼 협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기사로 내보냈다.
보도 직후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범죄단지에 감금된 한국인 수십 명이 ‘살려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내부 고발자가 되겠다’는 제보도 쏟아졌다. 동시에 범죄자들이 모인 텔레그램 채팅방에선 김 기자의 신상정보가 공유됐다.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한 협박 메시지까지 이어졌다. 이때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다.
김 기자는 연차 휴가를 내고 무작정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재 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해소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범죄자들의 협박성 연락이 이어져 경찰에 수사 의뢰까지 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더 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취재한 지 1년 가까이 지나서야 이 사건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 기자는 “늦어도 너무 늦게 터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현장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문제였다. 정부가 이 사건을 몰라서 대처를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아는데도 방치하고 있는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사안이 커지자 비로소 정부 대응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건이 확산하기 전까지 외교부는 정보공개 청구에도 비공개 결정만 내리며 쉬쉬하려는 태도였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부에서도 투명하게 공개를 해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메일 한 통… “나도 가해자였다”
KBS의 첫 보도는 리딩방 사기 피해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최인영 기자는 2023년 리딩방 투자 사기 수법을 보도했다. 이후 ‘몇천만원을 잃었다’는 피해자들의 제보와 연락을 받았다. 그는 피해 사례를 묶어 리딩방 사기의 유형과 수법, 피해 상황 등을 수차례 보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 기자는 익명의 발신자가 보낸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리딩방 사기 조직에 몸담았던 제보자의 연락이었다. 그 역시 범죄에 가담해 왔지만, 수없이 많은 피해자가 평생 모았던 재산을 잃는 모습을 보며 언론과 경찰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제보자는 유튜브 채널에 ‘리딩방 사기’를 검색한 후, 가장 많은 보도를 했던 최 기자에게 연락했다. 범행에 사용된 대본, 피해자들의 명단과 피해액 등이 담긴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다.
최 기자는 선배 원동희 기자와 함께 두 차례 캄보디아에 방문했다. 범죄단지로 추정되는 건물에 잠입해 이곳에 수백 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중국인 총책 아래서, 사실상 감금 상태로 주식 리딩방 등 사기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다.
보도 직후 경찰이 국립수사본부장을 캄보디아에 파견하고, 파견 인력도 1~2명 늘리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일회성 대책에 그쳤다. 최 기자는 “(지난해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그때도 똑같이 ‘코리안 데스크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피해자 구조에 영사가 적극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었는데 이제야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더 악랄해진 범행… “그때 대응했다면”
최인영 기자와 함께 원동희 KBS 기자 역시 1년 넘게 이 사건을 쫓고 있다. 올해 초 정치부로 발령이 났음에도 여전히 캄보디아 사건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8월 사망한 대학생이 강제로 마약을 투약 당하는 동영상을 확보했다. 지난해 취재 당시와 비교해 마약 투약까지 이어질 정도로 범죄 수법이 더욱 악랄해진 것이었다.
원 기자는 이 영상을 국정감사 시즌에 맞춰 보도하면 정치권의 반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9월29일 보도 직후 캄보디아 문제가 비로소 정치권과 정부에서 대두되며 각종 대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기자들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만약 ‘언론이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실태를 조명한 직후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싶어서다.
원동희 기자는 “지금 보도되고 있는 내용이 작년에 저희가 보도했던 내용들과 똑같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 “지난해 보도 직후 대책 마련에 나섰다면 8월 사망한 20대 대학생은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다빈 기자는 “왜 꼭 사람이 죽어야만 변화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최근의 대응을 보면)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의지를 가지고 해결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문제인데, 진작 움직였다면 정말 많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