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를 키우는 70~80대 할머니가 기억난다. 어렸을 때 결혼하며 강릉으로 왔고 50년을 살았는데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자식 같은 작물이 말라가는데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나. 아파트에 단수도 하고 있는데 물을 하루 몇십분만 틀어준다는 곳도 있었다. 재난을 넘어 재앙이다.”
2008년부터 강릉 지역을 담당해 온 전영래 강원영동 CBS 기자는 108년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국가 재난사태가 선포된 강원도 강릉시의 현재에 대해 11일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에도 상수원 저수율이 30%까지 떨어지는 등 가뭄 현상은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오봉댐 저수율이 11%대를 기록하며 바닥을 드러내고 단수까지 시행한 상황은 전례가 없다. 서울이나 수도권 언론사에서도 뉴스가 되고 있지만 그간 가장 가까이서, 공공기관의 대응을 전하고 시민들의 피해상황, 목소리를 담아온 지역기자들에게 들어본 현실은 더 심했다.
현재 물 부족은 농민, 자영업자 등은 물론 일반 시민들의 생활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다. 6일부턴 아파트, 호텔 등 저수조 100톤 이상 대수용가를 대상으로 제한급수가 실제 시행됐다. 오전오후 30분 또는 1시간씩만 물을 쓸 수 있다. 지역 한 통신사 기자는 “산불은 시내에 거의 피해가 없다. 수해는 골짜기나 일정 지역이 대상이다. 이번 가뭄은 실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피해 정도로는 제일 심하다. 관광객을 빼고도 20만 시민 대부분이 불편을 겪고 있다. 씻을 물이 없다거나 머리를 감다 물이 끊기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있나”라며 “살수차가 와서 저수지에 방수포(물대포)를 쏘는 건 사실 기름값도 안 나오는 건데 물은 안 먹으면 죽지 않나. 그런 효율성을 따질 상황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강릉시가 시민들에게 생수를 배급한다. 각종 기업과 단체, 타 지역 시민 등이 보낸 온정이 전해지고, 전국에서 소방·살수차가 와 정수장이나 상수원에 물을 붓는다. 군함이 물을 싣고 와서 배급하는 게 현재다. 덕분에 당장 식수가 부족하진 않지만 물이 끊긴 일상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가뭄을 버티는 당사자로서 권태명 강원일보 사진기자는 자신의 일상을 ‘르포’로 전하기도 했다. 1인당 12리터 생수를 받고 아파트 안내방송 후 시작된 단수 첫 주, 가장 문제는 화장실 사용과 씻을 물이었다. 물 나오는 시간을 놓치거나 받아두지 않으면 변기 사용이 어렵다.
권 기자는 “오봉댐을 드론으로 찍고 강 상류, 중류도 봤지만 가뭄은 다른 재난과 비교해 벌어진 일 자체를 보여주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급수차나 살수차, 생수 배급 현장을 찍었지만 매번 어디 갈 지 고민하고 있다”며 “퇴근 후 바로 집에 안가면 씻질 못한다. 주변 동료들이 생수를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도 너무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냈고 보통 비가 올 때쯤 하는 거라 이후엔 비가 왔다. 지금은 그런데도 비가 안 온다. 교회에선 기우 예배를 할 만큼 시민들 염원이 크다”며 “태풍, 산불, 폭설까지 온갖 재난을 겪어왔는데 이젠 하다하다 가뭄까지 왔다는 말을 동료들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극한 가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도암댐 도수관로 방류수를 한시적으로 생활용수로 쓰는 방안이 결정되기도 했다. 24년간 방류되지 않았던 물의 수질, 강릉시의 대응,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발전방류 시도 등을 두고 여러 논란이 제기됐지만 상황의 심각성이 고려된 결과다. 13일 강릉 일원에 80~120mm 단비가 내리며 오봉댐 저수율이 16%까지 올라 한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해갈엔 못 미쳤다. 이날 단비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오봉댐을 찾은 모습이 보도로 다뤄지기도 했다.
이연제 강원도민일보 기자는 “연곡 지하댐 등이 중장기대책으로 나와 있지만 당장 해법은 비밖에 없다. 다만 가뭄은 처음이지만 재난을 워낙 많이 경험해서인지 시민들도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셔서 취재에 어려움은 없다”며 “가뭄이 끝나도 주민들의 일상 회복과 더불어 성수기 휴업, 영업단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관광도시 경기회복 등 남은 문제가 많다. 일단은 가뭄 추가 취재와 함께 임시 방류하는 도암댐의 추후 발전 방류에 대해 더 들여다 볼 생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