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공감이 희망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십 년 후에…' 해외 번역출판 계약, 윤희일 경향신문 도쿄특파원

딸은 결혼 전날 밤 아빠에게 편지를 남기려다 아빠의 노트북에 담긴 일기를 보게 된다. 아빠의 일기는 10년에 걸쳐 쓴 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리고 동시에 자살을 결심한 아빠의 유서였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IMF를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서서히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아빠, 아니 아빠들의 인생과 외로움. 윤희일 경향신문 도쿄특파원이 2014년 12월 출간한 에세이 ‘십 년 후에 죽기로 결심한 아빠에게’의 내용이다.


펴낸지 1년도 더 된 책의 이야기를 꺼낸 건 그의 책이 최근 중국과 대만의 출판사와 번역출판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현직 언론인이 쓴 책이 해외에서 번역 출판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윤희일 기자는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이다. 계약을 맺었던 한국 출판사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엄청 놀랐다”며 “고은 시인 정도는 돼야 글이 번역된다고 생각했다. 아마 한류 바람으로 문화 상품에 대한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윤 기자는 2012년부터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사회부 기자 시절, 자살과 자주 마주쳤던 그는 자살한 사람들이 남긴 유서와 휴대전화 메시지를 살펴보며 자살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복수심보다는 대부분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수치 위주의 비문학적인 글보다 사례를 모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쓰고자 노력했다. 어떤 기자가 표현했듯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 형태’의 글이었다.


사실 그런 형식의 글은 그의 바람이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썼던 그의 첫 직업은 CF 연출가였다. 그는 옛 경험을 토대로 삼아 문장을 구어체로 만들고 실제 대화처럼 쓰기 위해 어깨 힘을 뺐다. 책을 다 쓴 후에는 처음부터 다시 쓰자는 생각으로 기사 형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3년여의 고통 끝에 나온 글은 출간 즉시 화제를 몰고 왔다. 교보문고에서 화제의 신간으로 선정됐고 지난해 10월 개최된 사하전국독서경진대회에서는 ‘김약국의 딸들’ ‘목민심서’ ‘미움받을 용기’ 등과 함께 지정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디오북 제작업체의 제안으로 오디오북으로도 만들어졌다.


윤 기자는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공감에서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많은 딸들이 제 책을 보고 깊이 공감하더라고요. 번역출판 계약을 맺게 된 것도 그 나라의 감수성, 사회적인 문제가 제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는 건 모든 사람은 살아야 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거든요. 제 책이 출간될 대만, 중국, 홍콩 등에서는 이 책을 읽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고르는 이들이 좀 더 줄어들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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