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4일 집회 현장에서 목격했던 경찰의 물대포는 그 어느 때와 달랐다. 그날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사 조준 물대포에 고꾸라졌다. 바로 그때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선생은 한 달이 넘도록 생사의 경계에 있다. 그리고 나는 백 선생이 그렇게 쓰러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이렇게 때아닌 상복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경찰의 집회 해산 지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을 향해 정조준한 물대포는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장비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날 또 그날 이후에도 경찰이 바로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법은 국민의 인권과 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국가 권력은 바로 이 헌법을 준수하고, 보위해야 할 의무가 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 권력의 현신인 경찰의 역할도 바로 이것이다. 헌법과 현실의 간극이 컸던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기억하고 떠올려야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언론인으로 살아온 지 26년째다. 사진 기자로 시작해 편집기자, 미술 기자를 거쳤다. 이제 사람들 대부분은 내 입으로는 절대 쓰지 않는 극존칭 ‘화백’으로 부른다. 영욕이 함께한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처럼 ‘하방’할 수 있게 나를 품어준 프레시안 임직원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울러 프레시안 임직원 모두의 뜻을 빌어 농민 백남기 선생님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