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만의 콘텐츠 누구나 어디서든 찾게 하고 싶어"

[기협 인터뷰] 취임 100일 맞은 이동현 경향신문 사장

경영이유로 처우개선 회피 안해
자리에 적합한 사람 쓰는 게 원칙
쓰고 싶은 것 마음껏 쓰는 신문
편집권 관여는 앞으로도 없을 것


콘텐츠·조직·시스템 혁신안 준비
직원 직무분석 끝나면 곧바로 실천
독립언론 위해서도 경영안정 중요
전시사업 등 안정적 수익방안 구상



인터뷰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인터뷰할 요량이었다. 웬걸, 회의 참석자들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세웠지만 간혹 웃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결국 임원회의는 시간을 꽉 채우고 말았다. 이동현 사장은 앉자마자 “질문이 너무 어렵다. 노조에서 보낸 것 아니냐”고 농을 던졌다. 하지만 미리 건넨 질문지에는 여기저기 볼펜 글씨로 빼곡했다. 그는 1993년 4월 경향신문에 입사해 종합편집장, 광고국장, 상무보 등을 지냈으며 지난 5월20~21일 치러진 사장 선거에서 8표차로 신승했다. 경향신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 애쓰는 이 사장을 지난 17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 사장 접견실에서 만났다.

-곧 취임 100일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나?
“취임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회사의 재무구조를 살폈다. 부문별로 재무구조가 어떤 상태인지 점검했고, 몇 가지 문제점들은 실제로 개선 중에 있다. 최근 이상네트웍스 주식을 처분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동안 주식 가격이 폭락해 채무 변제도 못하고, 팔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자를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 주식 가격이 올라 채무를 모두 상환할 수 있었다. 또 장부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문제들은 실제 현금 흐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회사의 재무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항목이기 때문에 신경 써서 정리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사장으로 뽑아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동안 살림살이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경영합리화를 통한 구성원들의 처우개선이나 수평적인 조직문화 확립 등을 기대한 것 같다. 실제로 선거과정에서도 구성원들의 처우개선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했다. 경영 상황이 안 좋다는 이유로 회피하려 하지 않고 회사가 감당할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임금협상 과정도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지만 기획실에 회사가 감당할 최대치의 임금 수준을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덕분에 그동안 유동적으로 지급했던 상여금을 400%로 고정시켰고 기본급도 10만5000원 정액 인상할 수 있었다.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건 다 했기에 노조에서도 잘 받아들였고 큰 갈등 없이 타결됐다. 하지만 아직 구성원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닐 거다. 그들의 희생으로 숱한 위기를 넘긴 만큼 앞으로도 복지수준을 우선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장 선임에 반대했던 구성원들을 의식해 제대로 된 인사를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도 밝혔지만 내 원칙은 분명하다.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 하나 바뀐다고 조직이나 신문이 바뀌나. 여전히 경향신문은 우리 구성원들이 만드는 신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일하는 것이 옳다. 편집국장 유임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랬다.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임명된 지 8개월밖에 안 된 편집국장을 사장이 바뀌었다고 새로 인사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 없는 인사를 해서 조직 역량을 재집계하며 힘을 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향신문은 10년째 매출이 800억원대 안팎에 머물러 있으며, 그동안 자산 매각을 통해 근근이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신수종 사업을 계획하고 있나?
“매출이 850억원 가까이 되는데 신문에서 나오는 것이 500억원 정도 된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종이신문이 차지하고 있는 구조인데 50% 밑으로 낮춰야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매출액을 늘리는 일은 참 어려운 문제다. 새로운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할 텐데 우선 경향하우징페어같은 전시사업이 한두 가지 더 있어야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또 내년이 창간 70주년이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사업을 전개하고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부분도 생각하고 있다.”

-내년 창간 70주년을 맞아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있나?
“우선 편집국 중심으로 내년 1월부터 창간 70주년에 맞는 기획물들을 선보일 것이다. 사업 부분에서는 70주년 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있는데 각 실국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70주년 기념 포럼과 그동안 구상해오던 전시사업 등을 준비할 예정이다. 아직 포럼 주제를 정하지는 않았는데 현재 의견 공모를 하고 있다. 좋은 포럼이라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전시사업의 경우에는 너무 수익성에 함몰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업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사장 취임 후 광고 및 협찬 때문에 경향신문의 지면을 포기하는 경우는 없었나?
“주 수익원이 광고 및 협찬이라지만 사장 취임 후 자본권력 때문에 편집권에 관여할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쓰고 싶은 거 마음껏 쓰는 신문이다. 물론 광고주 입장에서야 다른 매체보다 상대적으로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향신문의 디지털 미디어 역량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어떤 전략을 마련하고 있나?
“우리가 다른 매체보다 좀 더 일찍 디지털로 방향을 잡고 나름대로 대응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2010년부터 ‘디지털 퍼스트’를 내걸고 통합뉴스룸 체제를 갖춰 온라인 뉴스 시장과 SNS 부문에서 입지를 다졌는데 이제 ‘모바일 퍼스트’, 나아가 ‘모바일 온리’를 기치로 다음 단계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콘텐츠, 조직, 시스템 혁신 방안을 마련해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믿고 볼 수 있는 기사’, ‘깊이 있는 콘텐츠’라는 경향신문의 원칙은 계속된다. 뉴미디어 생태계라고 해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덜 중요해지는 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향의 시각을 담은 기사, 맥락이 풍부한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에 맞게 제작·유통시켜 누구나 즐겁게, 자발적으로 경향신문을 찾게 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미디어 역량을 제대로 가늠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직무 분석을 하고 있다. 지금 편집국 인력이 230~240명 수준인데 어느 조직에서 어떤 일을 얼마나 하는지 국실별로 점검하고 있다. 이후 조정을 통해 우리가 중점적으로 역량을 집중할 부분에 인력 보강을 할 것이다. 11월 말에는 아마 직무 분석 결과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디지털, 모바일 전략의 일환으로 CMS 개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콘텐츠를 통합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는데 기사 작성부터 시작해 DB 관리 및 내부 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 등을 주안점으로 계획하고 있다. 1년 가까이 편집국 기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구현할 수 있는 부분과 어려운 부분들을 나눴고, 어떤 부분을 반영할지 분석했다.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는데 외부 업체와 단독으로 협의할 것인지, 신문협회 CMS 개발 작업에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신문협회에서는 14개 회원사를 모아 통합적인 CMS를 개발하겠다고 하는데 신문협회 CMS가 우리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 따져서 올해 안에 결정할 것이다.”

-신문 콘텐츠의 혁신도 요구되고 있는데?
“모바일 기사는 한 줄 제목에 기사 내용만 있기 때문에 사실 언론사간 차별성이 없다. 긴 콘텐츠를 읽기에도 한계가 있고 좁은 화면에서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도 제한적이다. 때문에 기사의 감흥은 아무래도 지면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다. 제목의 위치, 그래픽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사의 가치를 표출해놨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적 지각이 주는 것들은 모바일에서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종이가 갈 길은 분명하다. 모바일의 한계를 종이가 해소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선임기자, 전문기자 제도에 대한 생각은?
“경향신문에서 60년대에 태어난 분이 전체 직원 500명 중에 218명이다. 아마 이런 고령화 문제가 전문기자나 선임기자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니어들은 어떻게든 역할을 해줘야 한다. 편집국 중심으로 얘기한다면 대부분 20년 이상 기자로 일한 분들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특정 분야나 조금 더 관심을 쌓아온 분야에서 활약해야 할 것이다. 기여 방안도 적극적으로 찾을 생각인데 직무분석을 통해 무슨 일을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볼 계획이다. 그들이 전문 분야에서 제대로 일을 한다면 조직을 위해서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임기 동안 꼭 하겠다는 것이 있나?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독립 언론의 가치는 지켜져야 할 것이다. 한화와 1998년 3월1일 공식적으로 결별한 이후 벌써 만으로 17년이 지났다. 이제는 독립 언론 경향신문으로 자리를 잡을 때다. 그동안 좌충우돌했지만 조직의 정체성과 관련해 구성원들 간 의견일치가 자연스레 이뤄지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울러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영 안정도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거처럼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올 때 그대로 위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대책을 만들 것이다. 또 임금 등 구성원들의 처우를 최대한 개선하고 싶다.”

대담=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정리=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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