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에 자리를 내준 종이신문처럼 한 때 ‘광풍’이 불었던 블로그 역시 역사의 뒤안길에 서 있다. 분명한 것은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SNS 문화가 확산됐다는 점이다.
최연진 한국일보 산업부장은 ‘파워 블로거’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산증인 중 한 명이다. 그가 2004년부터 영화 등을 소개하는 블로그 ‘달콤한 인생(wolfpack.tistory.com)’을 시작한 이유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최연진 부장은 “학창시절부터 ‘주말의 명화’ 등 영화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 쉬는 날엔 소장하고 있는 DVD나 블루레이(4000~5000장)를 2~3편씩 본다”며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DVD와 관련된 책을 쓰기 위해 지금도 블로그를 한다”고 말했다.
‘달콤한 인생’은 최 부장에게 자신만의 ‘쉼터’이자 개인용 ‘데이터베이스(DB)’인 셈이다.
그는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 영화 블로그에는 홍보용 영화 사진만 사용했다”면서 “블로그에 게재하는 사진을 내용에 맞는 장면으로 일일이 캡처해 올리다 보니 신기하게 생각하는 방문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달콤한 인생’은 2012년 티스토리가 선정한 ‘베스트 블로거’에 올랐고, 최근엔 누적방문자 550만명을 넘겼다.
최 부장은 “DB확보 차원에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일주일 4~6개의 글을 포스팅했다”면서 “지금은 바쁜 업무 탓에 7~10일에 한 번꼴로 글을 올리는데 텍스트에 맞는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같은 영화를 2~3번씩 봐야하기 때문에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DVD, 블루레이에는 영화관에선 맛 볼 수 없는 코멘터리(영화에 대한 특정 장면이나 행위를 해설 또는 부연 설명하는 내레이션), 삭제된 분량 등이 있어 긴 것은 1편을 보는 데만 20~30시간 걸린다.
최 부장이 DVD와 블루레이 등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문화부에 배치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종합일간지 중 한국일보만 유일하게 DVD를 소개하는 면을 주당 한개 면씩 할애했습니다. 당시 문화부장도 ‘어디서 취재해 오냐’고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전문 기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최 부장은 “공포물을 정말 싫어하는 데 첫 언론 시사회에서 본 영화가 프랑스 공포물인 ‘엑스텐션’이란 영화였다”며 “이런 공포물을 하루에 3편씩 보면서 ‘영화를 좋아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컬렉션 문화나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최 부장은 “할리우드의 경우 영화를 찍을 때부터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부가판권 시장을 겨냥한다”면서 “하지만 국내의 경우 영화 상영에만 ‘올인’하다 보니 콘텐츠가 풍부해지기 힘들고 이에 따라 좋은 창작자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고 우려했다.
이런 빈약한 문화시장이 문화강국으로 커나가는 데 제약이 된다는 게 최 부장의 설명이다.
“외국의 경우 아카이브나 라이브러리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면 1970년대는 까마득한 과거가 됐고 1980년대 영화 원본마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현재 시장이 없고 약하기 때문에 과거 콘텐츠까지 사라지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