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막말 e메일

제296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 경향신문 홍재원 기자

재벌그룹이 대학을 인수하면 어떻게 될까.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의 e메일 내용이 이를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3월,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이 ‘긴급토론회’를 열겠다고 하자 “그들(반대파 교수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적어 총장과 보직교수들에게 보냈다. 


“인사권을 가진 내가 법인을 시켜서 모든 걸 처리한다”는 대목에서 이같이 섬뜩한 막말이 나온 배경을 알 수 있다. 대학에 돈을 냈으니 ‘총수’로서 마음대로 하는게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그는 “(교수들을) 악질 노조로 생각하고 대응해야지, (보직교수) 여러분은 아직도 그들을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총수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학 교수는 악질 노조며, 이들의 목을 가장 고통스럽게 쳐야 마땅하다는 생각. 그의 ‘민낯’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박 전 이사장은 보도가 나간 날 곧바로 모든 직을 버렸다. 대학 이사장 자리 뿐 아니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에서도 물러났다. 후속 기사를 고민하던 그 시각, 박 전 이사장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박 전 이사장의 e메일 내용 일부를 확인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학내 ‘침묵’을 이해하는 일이다. 교수들과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심지어 e메일을 받은 총장과 교수들도 그동안 아무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적잖은 학내 구성원들은 생각보다 큰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재벌이 가진 ‘돈의 힘’에 관한 기대 말이다. 대학은 침묵하며 기대하는 것 같다. 


보잘 것 없는 노력을 격려해준 기자협회와, 늘 지원해주는 경향신문 선배·동료들에게 무한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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