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의 열정은 인정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천박한 에너지였을 뿐이다. 크고 작은 기자상들을 받았지만, 나는 더 교만해졌고 이내 모든 일에 심드렁해져 버렸다.
2009년 미국 미주리대학에서 1년 동안 연수하면서 나른한 삶이 ‘전복’되는 경험을 했다. 미국 기자들의 비극과 이를 극복하는 열정을 목도하면서부터다. 금융위기 여파로 수많은 기자들이 거리로 내몰렸음에도 그들의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느낀 바가 많았고, 각오도 굳혔다. 손톱만큼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계속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쪽 해경의 억울한 파면’ 기사는 이런 다짐의 산물이었다.
지난해 4월 말이었다. 새벽 1시께 퇴근해서 자고 있는 기자의 휴대폰이 사납게 울렸다. 술에 잔뜩 취한 50대 사내가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는다”면서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전화한다”고 울먹였다.
누군지 감이 잡혔다. 며칠 전 만났던 전 해경 간부였다. 이 해경 간부는 지역 유지의 낚싯배를 면세유 부정사용 등의 혐의로 단속했다가 전격적으로 감찰을 받아, 200여만 원의 금품을 수뢰한 혐의로 파면됐다.
잠결에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혀 주겠다”고 약속해 버리고 말았다. 현장을 수없이 답사하며, 8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탐문했다. 그 결과 해경 간부가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결국 재판에서도 승소했다. 판결 직후 해경 간부는 전화를 통해 “나와 내 가정을 살렸다”고 고마워했다. 후배들로부터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 내가 아직 열정을 유지하는 데는 이런 보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