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 중 하나다. 오케스트라 리허설 중간에 잠시 짬을 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방에서 나갈 때도, 그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퍼부어댄다.” 지휘자 정명훈이 김성현 조선일보 기자를 평한 말이다.
기자 생활 16년차인 그는 딱 절반인 8년을 음악 담당 기자로 살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그는 음악에 있어서는 집요하고 끈질겼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악은 그에게 ‘업보’와도 같기 때문이다. 성악을 전공한 친조부와 피아니스트였던 고모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한 그는 의식하기도 전에 음악에 푹 빠져버렸다. 초등학교 5학년, 친조부가 돌아가셨을 때 음반을 모두 물려받은 그는 클래식을 좋아하던 할아버지의 취향까지 그대로 물려받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렸을 때 사촌들이 집에 놀러 와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브람스 교향곡 1번을 틀어줬어요. 웃으면서 저에게 들국화 노래가 없냐고 물어보던 게 생생하네요. 음악의 시간표가 완전히 뒤집어졌던 거죠. 대중음악은 나중에야 좋아하게 됐어요.”
좀 더 큰 학창 시절에도 그는 음반 한 장을 사기 위해 학교를 걸어 다니는 문제아(?)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음반을 사는 것은 그의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입사하고 나서도 음반을 마음껏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는 집에 음반방도 따로 마련했다. 4면이 다 음반으로 채워져 있는데 1만장 가까이는 된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 돈을 모았으면 집이 10평은 늘어났을 거라고 한탄을 하셨죠. 그만큼 음반을 모으는 것에 집착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집착이 사라지더라고요. 대신 오케스트라, 오페라 등 공연을 보는 것으로 옮겨갔죠.”
2010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정확히 1년 동안 김 기자는 프랑스 파리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유럽 8개국 21개 도시 42개 공연장에서 176편의 공연을 봤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공연을 본 셈이다. “공연을 보느라 가산을 탕진할 뻔했어요. 그럼에도 공연이 갖고 있는 민주적이고 휘발적인 속성에 반해 한동안 푹 빠졌었죠.”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문학이나 영화 등 음악과 관련이 있는 것들에 관심이 갔다. 특히 그는 음악과 영화가 만나는 것에 주목했다. 대사, 음향, 영상 등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음악은 일부분일 뿐이지만 효과적으로 쓰인다면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고 생각했다. 김 기자는 최근 “아름다운 음악과 영화가 만나 스파크가 튄” 영화 32편을 모은 책 ‘시네마 클래식’을 썼다. 다섯 번째 책이다. “음악에 대한 허기나 갈증이 있어요. 아직도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알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속상하고, 그런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책을 써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렵기만 한(?) 클래식을 쉽게 듣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절대 주눅 들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클래식이 어려운 건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서양 음악이라 정서도 잘 안 맞는데 심지어 옛날 것이니 당연히 쉽지 않죠. 클래식은 농구나 야구, 영화나 드라마가 없던 시절에 즐기던 오락이에요. 지금 우리에게는 모두 있는데 심심하고 밋밋한 클래식을 듣는 건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클래식을 시작하고 싶다면 우선 빗방울 전주곡 같은 소품을 들으세요. 그리고 별명이 붙어 있는 음악을 찾아서 듣습니다. 유명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게 몸에 익으면 그 다음 공연장에 가면 됩니다.” 클래식 지상주의자가 아니라는 그가 한 말인 만큼 더욱 믿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