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을 맞아서는 핑계였다. 어려운 신문시장에서 2년 연속 흑자를 이룬 비결이 궁금했다. 또 한국일보 인수를 추진하는 등 미디어 M&A에 적극 나서는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한국경제신문 김기웅 사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사옥에서 만난 그는 “(기자협회보가) 미워할까봐” 인터뷰에 나섰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대화를 풀어나갔다.
-한경이 올해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우리나라가 한창 어려울 때인 1964년 한경이 창간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70달러 수준의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50년 동안 체계적으로 산업을 일으켜 경제 규모를 키웠고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뤘다. 한경의 반세기 역사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사와 궤를 같이 한다. 창간 50주년은 대한민국 경제사의 한 페이지를 정리하고, 또 다른 첫 걸음을 떼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창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경제 대도약’을 선언하고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돌파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 의미는?
“지금의 경제 위기에 대해 기업가와 학자에게 물어보면 오일쇼크도, 금융위기 여파도 아닌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최강인 제철과 조선이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의 기술력이 성장하면서 삼성과 현대차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비판만 하지 누구도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어렵다고 걱정만 할 뿐 목표가 없다. 그래서 슬로건을 내걸자고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산업의 성장과 상관없이 환율이 올라가면 금방 이룰 수 있는 수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만 달러를 제시했다.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은 연 3%씩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20년이 넘게 걸리는 프로젝트다. 경제 주체들이 이 목표를 갖고 다시 한 번 경제대도약을 이룩해 완전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면 한다.”-성장도 필요하지만 양극화, 부의 쏠림이 심각하다. 부의 재분배도 중요하지 않나?
“부의 재분배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방법에 있어서 기존의 재화를 계속 나누는 방식으로는 재분배를 오래 할 수 없다. 돈을 버는 주체가 기업이라면 기업이 성장해 돈을 벌어서 세금을 내고,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입각해 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차원에서 재분배 개념이 형성돼야 한다.”
광고·판매 수익으론 유지 어려워…신문 공신력 활용, 신사업 찾아야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다 매출액을 올렸다. 비결이 무엇인가.
“한경은 소유와 경영이 완전 분리돼 있다. 그야말로 주인이 없는 회사다. 이런 회사는 기업 경영에 상당히 불리한 것이 많고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나타난다. 일례로 한경은 개인의 역량에 비해 응집하는 분위기가 덜 형성돼 있다. 또 그만큼 구성원들이 느슨하게 움직여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선에서 끝을 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고 경영 효율화를 위해 취임한 첫 해 감사팀을 만들었다. 기획조정실 직원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경영측면에서 누수가 일어나고 있는 곳은 없는지 세밀하게 파악했다. 덕분에 첫 해에 많은 비효율적인 관행들을 제거했다. 또 수익을 개선하자는 생각에 자산관리를 효율화했다. 우리 소유인 서울 중림동 사옥은 절반은 세를 주고 있는데 공간을 잘 활용해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1층 사원 식당은 점심시간 때만 사용하고, 18층 강당은 한 달에 3~4번 밖에 쓰지 않는다고 해서 주말동안 외식업체에 빌려줬다. 1층에 검은 대리석 기둥도 어두침침해 흰 막을 쳐 갤러리를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다. 자연스레 건물 만족도가 높아지고 보증금 수익도 60% 정도 올라갔다. 광고와 판매라는 신문의 전통적 수익모델이 한계에 봉착해 대체투자포럼처럼 신문의 공신력과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신사업도 진행했다.”
-신문이 좋아졌다는 얘기가 많다.
“한경에 처음 왔을 때 신문 품질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먼저 윤전기를 점검하고 신문 종이를 테스트했다. 무게를 따지고 쭈글거림, 뒤비침 등을 살폈다. 매주 조사를 하고 종이 상태를 보고받으니 자연스레 신문 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매일 정영민 제작국장이 인쇄상태를 보고하고 있다. 이밖에 잉크를 어떻게 배열하는지, 칼라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지는 데도 전쟁을 치렀다.”
-한경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은 무엇인가?
“종이에서 디지털로 가는 것은 명백한 흐름이라 뉴미디어 쪽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온·오프를 통합하는 것은 물론 CTS에 대한 장기투자를 계획하고 있고 CMS도 개편해 고도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IoT 멀티미디어 뉴스 실험도 해봤고 콘텐츠 혁신은 관련 부서에서 진행 중이다. 나름대로 전략이 있어 상세하게 말은 못하지만 디지털화를 미래 방향으로 놓고 최우선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어 곧 성과가 나리라 본다. 그러나 아직까지 종이 신문을 대체할만한 수익은 내지 못하고 있어 고민이 크다.”
-한국일보 인수에 참여한 이유는?
“한경은 2012, 2013 영업이익이 100억을 넘겼고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32.17%에 불과하다. 사실상 무차입 상태라고 보면 된다. 여력이 있는 만큼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M&A에 관심이 많다. 한국일보의 경우 브랜드 이름도 같고 인수후보군 가운데 미디어업에 대한 이해가 가장 뛰어나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최적의 인수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치·사회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결국 탈락해 아쉬움은 있지만 또 다른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M&A를 할 예정인가?
“아직 우리는 배가 고프다. 새로운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좋은 정보를 찾고 있다. 미디어 관련해서는 지역지들의 요청이 오기도 한다. 미디어 인수합병에 관심을 갖고 있고 여력도 있는 만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라면 온·오프라인에 관계없이 전향적으로 보고 있다. 지역, 서울 할 것 없이 들여다볼 용의가 있다.”
-지난 3월 상암DMC 사옥인 ‘디지털큐브’가 준공됐다. 한경TV 등 계열사 입주 계획은?
“한경을 비롯해 한경TV, 조선일보 등 6개 사업자로 NF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사옥을 준공했다. 당시에는 사옥 근처에 랜드마크가 들어선다고 했는데 무산되면서 그 지역이 상대적으로 처진 곳이 됐다. 게다가 미디어·IT 등 입주 기업에 대한 적합업종 규제도 있어 고민이 많다. 현재 한경TV가 이전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사내에서 찬반양론이 있는 것 같다. 정 해결되지 않으면 일부 자회사를 옮겨가는 것에 대해서도 검토할 생각이다.”
성장한 만큼 사원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일 외에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노력
-한경 논조가 친기업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 전에 기업을 진짜로 이해하는 신문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신문들은 반기업적 정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기업은 아무리 때려도 늠름하고 꿋꿋한 공룡이 아니다. 10대 기업으로 손꼽던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세가 기울었다. 그만큼 부침이 심하다. 이 때문에 우리 신문은 기업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하고 들어주자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기업이 옳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선의 의미에서 탐욕이 있고 그것이 성장의 원동력이지만 그만큼의 숙제를 안고 있다. 모럴해저드를 일으키는 기업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할 생각이다. 기업과 기업인들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까지 덮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복지가 많이 개선됐다고 들었다. 직원들 처우와 관련해서는 어떤 계획이나 구상이 있나?
“회사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적정한 재원 확보가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사원들 역량으로 회사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장 취임 이후 200%, 300%, 380%로 성과급을 매년 늘려왔다. 올해는 성과급 앞자리를 4로 바꾸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돈이나 선물뿐만 아니라 사원들을 기쁘고 편하게 만드는 방법은 많다. FUN 경영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사원들이 일 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밝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노력이 계속된다면 사원들의 애사심과 자긍심이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대담=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정리=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
김기웅 사장의 ‘FUN 경영’
생일·결혼기념일 선물 챙기고
사장실 문턱 낮춰 언제든 대화
김기웅 사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FUN 경영이라고 했다. 소통을 중시하고 사원들이 기쁘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그것. 김 사장은 “사원들이 일 외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끔 하고 싶다”며 “돈 들이지 않고도 해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먼저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층 로비에 갤러리를 만들고 피아노를 들여놓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시간에는 피아노를 전공한 아르바이트생이 이곳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특별한 날에는 선물도 준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는 연차휴가와 영화표를, 크리스마스에도 영화표와 함께 케이크를 지급한다. 1년에 1~2번 정도 잠바 등을 선물하며 사원들을 격려하기도 한다. 지난해 창간기념일 때는 “고생해줘서 고맙다”며 1층 로비에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포장한 초콜릿을 직접 나눠줬다.
사원과의 소통도 중시한다. 딱딱했던 창간기념식과 신년하례식을 좀 더 자유스러운 다과회 형식으로 바꿨다. 사장실 문턱도 낮춰 언제든 사원과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