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태양광 '날림 건물'…보조금 줄줄 샌다
제283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 / KBS전주 김덕훈 기자
KBS전주 김덕훈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07 15: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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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전주 김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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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은 못 챙기는 놈이 바보?사기 치기로 작정한 인간들에게 ‘나랏돈’만큼 만만한 건 없다. ①워낙 규모가 커 적당히 빼 먹어도 티가 안 난다. ②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아낼 ‘주인’이 없다. ③어쩌다 부정 수급 문제가 불거져도, ‘관리 부실’ 책임을 피하려 공무원 등 책임자들이 알아서 눈 감아 준다. “‘나랏돈’은 못 챙기는 놈이 바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는가.
태양광 발전 보조금이 딱 이 경우다. 정부는 2년 전, 보조금 지급 체계를 손질했다. 사용 중인 축사나 재배시설 지붕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면 한국전력이 비싼 값에 전기를 사들이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논·밭 등 땅 위에 직접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는 경우보다 보조금이 2배 비싸다. 논·밭에 새로 개발해 발전 단지를 만들면 환경이 훼손되니, 이미 지어진 건물 지붕이나 옥상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취지였다.
엉터리 태양광 시설 난립…줄줄 새는 보조금정책 효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지붕에 태양전지판을 얹은 정체불명의 날림 건물이 땅 값이 싼 논·밭에 난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도 시행 2년 만에 전국에 2천 채 넘는 건물이 농촌에 지어졌다.
보조금을 노리고 지은 건물 중 상당수는 지자체로부터 ‘버섯재배시설’로 허가받았다. 하지만 실제 버섯농사는 불가능한 날림 건물이다. 철판으로 얼기설기 벽면을 둘러놓고, 스프링클러 같은 기본적인 급수 시설조차 갖춰놓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당국의 감독을 피하기 위해 다 썩은 나무에 버섯 종균을 듬성듬성 심어 건물 안에 세워놓은 정도였다.
결국 보조금 지출만 크게 늘고, 논·밭 훼손은 더욱 심해진 꼴이 됐다. 허술한 제도가 이런 부작용을 낳았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는 ‘기존 시설물’ 지붕이나 옥상을 활용한 경우에만 보조금을 최대로 받을 수 있게 해놨지만, 정작 ‘기존 시설물’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전력 당국의 허술한 관리·감독도 문제를 부추겼다. KBS의 취재 시점까지 관리에 책임이 있는 에너지관리공단은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를 단 한 건도 찾아내지 못했다. 문제가 ‘사실’로 확인된 뒤에도 부정 수급자들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게 이뤄졌다. “태양광 발전을 하는데 있어 시설물의 본래 목적(이 경우는 버섯재배)이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산업통상자원부 고시에 명백히 위반되는데도, 에너지관리공단은 “미래 에너지원인 태양광 에너지 사업이 후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정 조치는 하되, 처벌은 최소화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전력 당국 관계자의 직접 투자 없었나?수차례에 걸친 문제 제기 끝에 에너지관리공단은 태양광 발전 시설 700여 곳을 조사해 시설이 미비한 180여 곳을 적발했다. 공단은 160여 곳에 대해서는 경고 및 시설보완 등 시정조치를 요구하기로 했고, 부정 수급 정황이 확실한 20여 곳은 공단 내 기술위원회 회부를 통해 보조금을 전액 환수하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태양광 보조금이라는 ‘나랏돈’은 정책의 허점을 꿰뚫고 있어야만 챙길 수 있다. 보조금 제도를 속속들이 아는 전력 당국 직원들이 친인척을 통해 투자하지 않았겠냐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한 전력 당국 관계자는 “태양광 시설에 투자한 한전 직원들이 많이 있다”고 제보했다. 만약 전력 당국 관계자의 보조금 부정 수급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이 사안을 취재한 기자로서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