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밥이다
제28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 경향신문 송현숙 기자
경향신문 송현숙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07 15: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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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송현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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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채 멍하게 있다가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온 사회가 슬픔과 탄식에 젖어 있는 때 상을 받았다고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어른으로서 죄스럽고 미안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생각해 보니 경향신문의 ‘놀이가 밥이다’ 또한 어느 한 면에선 이번 참사와 맥이 닿아 있는 듯 합니다. 제대로 놀지 못하고 마음이 병들어가는 아이들의 현실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인식에서 이번 기획은 출발했습니다. 놀 시간과 놀 친구와 놀 공간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숨막히는 일상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참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재를 하면서 목격한 아이들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참담했습니다. 경제적인 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학원 뺑뺑이와 숙제에 혹사당하는 아이들의 고달픈 현실, 삶의 질은 독재시대보다, 군부정권때보다 크게 후퇴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를 방해하는 현실은 너무 견고했습니다. 잘못된 안전제일주의와 입시 경쟁, 부모의 불안감과 그 틈새를 파고드는 사교육이 결합해 아이들은 한줌 남은 놀이마저 다 빼앗겼습니다. 아이들의 사교육 경쟁은 취학 전으로 내려왔고, 학원 가는 사이사이 스마트폰과 인터넷 게임으로 혼자서 놀고, 학원 버스 기다리며 10분, 20분 잠깐 잠깐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아이들 놀이의 전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정작 아이들은 당연한 권리를 빼앗긴 것도 모른 채 놀지 못하는 현실을 당연하다는 듯 덤덤히 받아들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들 알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아이들의 놀이권. 교육받을 권리만큼 당연하고 필수적인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변화의 전기를 만들어 보고자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너무나 팍팍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칫하면 현실과 겉도는 기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우려 지점이었습니다. 최대한 생생한 팩트로 놀이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고,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합의할 만한 선을 찾아, ‘최소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매일 한두 시간 만이라도 놀게 하자’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제때 밥을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리듯, 마음의 밥인 놀이가 부족할 때도 아이들이 병든다는 것을 알리자는 생각에 ‘놀이가 밥이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우려와 달리 기사가 나가는 동안 전 사회적인 공감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시리즈 후반부 교육감, 지자체장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응답에서도 아이들의 놀이부족이 시급한 일이라는 인식은 보수와 진보, 지역에 상관없이 공감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과 강원교육청은 기획기사 도중 놀이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고, 커뮤니티 회복의 공간으로 놀이터가 주목되며 서울시 마을지원센터에도 놀이터 소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변화의 움직임이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시리즈 기사는 끝났지만 취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세계 밑바닥권인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데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사회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취재하겠다고 아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긴 기획에 발품을 아끼지 않고 촘촘한 기사를 함께 만든 교육팀의 두 후배 곽희양·김지원 기자, 놀이의 힘을 1년동안 실증적으로 보여주며 기획의 단초를 제공해 준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의 와글와글놀이터와 ‘놀이터 이모’ 학부모님들께 박수와 감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