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카지노 도박 회장님의 5억짜리 황제노역

제283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 한겨레 정대하 기자


   
 
  ▲ 한겨레 정대하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꼭 일주일 째 되던 날이었다. 난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73) 전 ㈜세모 회장과 관련된 법인의 등기부 등본을 들척이고 있었다.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으로 호된 비판을 받았던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과 유 전 회장의 부동산 은닉 수법이 매우 유사한 것에 놀라던 참이었다. 부장으로부터 “수상자로 선정돼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내심 기뻤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로 나 역시 심리적 후유증을 겪고 있던 터라, 혹 속마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조심했다.

사주를 보면 “인복(人福)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카지노 도박 장면을 포착하고 일당 5억원짜리 노역형 보도를 하게 된 것도 사실 인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말 지역판에 허 전 회장이 지방세 체납자 1위라는 2단짜리 기사를 내 보낸 뒤 뉴질랜드 현지 동포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기사를 잘 봤다. 허 전 회장에 대한 소문이 별로 좋지 않다”며 근황을 알려줬다.

지난 2월 연합뉴스에서 오클랜드 현지 신문을 인용해 허 전 회장의 호화생활 의혹을 처음 보도한 뒤, 난 뉴질랜드 동포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돼 수백억원대의 벌금을 내지 않고 도피성 출국을 방치한 검찰의 책임을 묻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 그와 몇차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허 전 회장의 호화생활의 구체적인 실상을 전해 들었다. 난 400억원대 벌금·세금을 미납하고 도피성 해외 출국을 한 허 전 회장의 부도덕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카지노 도박 사진 한 장’이라고 판단했다. 나의 제안을 받은 뉴질랜드 동포는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어렵사리 잠입해 촬영한 허 전 회장의 도박 장면 사진과 동영상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이후 검찰은 고강도로 허 전 회장의 귀국을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허 전 회장은 일당 5억원짜리 노역을 실제로 살기 위해 귀국을 검토하겠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허 전 회장이 노역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재벌 총수였던 사람이 설마…? 소문의 조각을 모아 허 전 회장 쪽과 검찰 등을 다단계로 취재했다. 허 전 회장이 검찰에 귀국 의사를 밝히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이른바 ‘황제노역’이 전국적 이슈가 됐다.

취재경쟁이 시작된 뒤에도 주변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난 황제노역의 본질은 ‘위장노역’이라고 봤다. 허 전 회장이 국내외 은닉재산이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선택한 고육지책…. 위장노역의 실체를 파헤치면서도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뉴질랜드에 사는 동포들이 메일이나 전화로 허 전 회장의 이런저런 의혹도 들려줬다. 선배의 모친상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지인한테서 허 전 회장의 은닉 부동산이 있는 지명을 전해 듣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황제노역 여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상태다. 난 검찰이 황제노역으로 불거진 비리 의혹을 철저히 파헤치길 바란다. 세월호 참사는 사람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자본의 탐욕과 관료의 야합, 정부의 무능이 겹쳐 일어난 비극이다. 황제노역 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두 사건 모두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언젠가는 그 잘못이 드러난다”는 상식을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상식적인 행위를 엄단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더 이상 ‘미개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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