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에 나이는 없다…계급장 떼고 후배들과 함께 호흡"
77세에 현장 복귀한 아시아경제 함정훈 편집위원
김희영 기자 hykim@journalist.or.kr | 입력
2014.05.07 14:43:57
지난달 10일 오전 6시30분. 아시아경제 편집국에 77세의 노장(老將)이 들어섰다.
1960년 부산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편집국장, 국민일보 편집국장·전무 등 굵직한 직책을 거친 언론계 최고참. 그가 다시 편집국 문을 두드린 까닭은 무엇일까.
“편집자는 나이도 없고 직책도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치기 시작하는 50대에 ‘당신 좀 쉬시오’ 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편집국 한 모퉁이에 앉아서 계급장 떼고 젊은 사람들과 같이 해보자 싶었습니다.”
지난 3월 아경은 편집위원 모집 공고를 냈다. 자격요건은 ‘은퇴한’ 편집기자. 채용에 당당히 합격한 함정훈 편집위원은 편집 일선에서 한 달째 50살 연하의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함 위원은 “30~40년 전 감각을 되찾기 위한 추억여행을 하고 있다”고 웃어보였다.
아직은 ‘워밍업’ 단계다. 현재는 전날 제작한 간지 다섯 면과 당일 제작한 세 면을 검토·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배들과 항상 대화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은 최종 데스크인 이상국 편집에디터에게 ‘킬’ 당하기도 한다.
함 위원은 “자존심이 상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 쳤다. 그는 “편집 감각 찾기에 촉진제가 되고 있다”며 “내 녹슨 손을 빨리 갈아서 다 같은 편집자로서 배틀을 하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취재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그가 어떻게 편집의 세계에 발을 들였는지 궁금했다. 사회부 기자 초년병 시절, 자신의 기사가 지면에 실리지 않아 편집부에 항의했던 게 계기라고 했다. “레이아웃을 다 짜놨는데 마감이 늦었다”는 게 선배의 설명이었다. 함 위원은 “편집 권한이 막강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내가 넣으면 뉴스고, 안 넣으면 뉴스가 아닌 거구나 싶어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후 그는 후배들 사이에서 ‘편집의 전설’이 됐다. 국민일보 재직 당시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1면 제목을 글자 없이 새까맣게 칠해버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저의 트레이드마크는 ‘파격’”이라며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함 위원의 철학은 “독자와 대화하는 편집, 뻔한 말은 하지 않는 편집”이다. 그는 소싯적 ‘편집 리듬’을 점차 되찾고 있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언론사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던 그에게 동료와 선후배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현직 언론사 간부인 후배는 “일선 복귀를 환영하지만 후배들이 자존심 상해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함 위원은 “결국 모두가 박수칠 것”이라며 “편집기자는 끝까지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고 단언했다. 매체가 아무리 다양해져도, 종이신문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편집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함 위원은 ‘편집 인생’의 에필로그를 아경에서 찍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파격을 지향하는 편집자와, 이를 받아준 파격적 언론사. 두 파격의 만남이 조그마한 모멘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도 크다. 그는 “편집자는 편집을 편집하자”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편집은 끝이 열려 있는 마당이죠. 완성이 없는 도전이고 종착역 없는 여로입니다. 내가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스스로 편집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한 마디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것 같지 않나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