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써달라' 호소 귓가에 쟁쟁"

진도 현장에서 사설 쓴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언론이 리셋(reset)이 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세월호 보도는 기자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알 권리인지 계속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틀째인 18일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은 세월호 사고에 대한 현장 사설을 전격 결정했다. 지옥 같은 현장을 목격하지 않고는 사설을 쓸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바로 다음날 권석천 논설위원은 진도를 찾았다.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 맞닥뜨린 언론에 대한 거부감에 그는 놀랐다. 체육관에선 무심코 학부모들 뒤에 섰다가 “저쪽으로 가라”는 냉대를 받았고, 팽목항에선 카메라에 팔을 치켜드는 아버지들을 보며 “기자란 직업인으로서 씁쓸하고 슬픈” 감정을 느꼈다.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한 20일 새벽, 진도대교에서 “있는 그대로 써 달라”는 호소도 충격이었다. 언론은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보도했지만 돌아온 것은 불신이었다. 가족들은 언론이 정부만 대변할 뿐 그들의 입장을 말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 괴리감은 진도에서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단원고 3학년 학생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들께’ 편지에서 ‘직업병’이란 대목은 폐부를 찔렀다. 사실을 취재하고 기록하는 게 기자의 역할이지만 하나를 더 빨리 알아내고, 극적인 사진을 찍는 게 주가 되지 않았나하는 반성이 들었다.

“기자 특성상 늘 일을 우선하다보니 어느새 인간성을 소외시키는 건 아닌지 위기감이 들더군요. 예전엔 직업병이 ‘기자정신’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달라요. 결국 현장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피해자들의 심정을 공감하고 고려하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제는 ‘알 권리’의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한다. “알 권리는 기자들의 가장 큰 가치이자 존재이유이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알 권리’인가”라고 되물었다. “알 권리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다 용서되는 시대는 아니에요.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연을 묻는 건 그 대상에겐 고통일 수 있죠. 국민들도 사실을 알아야 하지만 재난구조를 위한, 재난을 당한 피해자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할 수 있죠.”

현장에 급파된 기자들에게 구체적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재기자 등 차장급 팀장들이 일부 있었지만 현장에는 5년차 이하 젊은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이 같은 재난현장에는 10년차 이상 기자들이 함께 투입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들은 아직 초년병이라 안에서 지시를 하면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하고, 자칫 의도치 않게 가족들의 상처를 덧낼 수 있죠. 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요. 연조 있는 기자들이 투입되면 현장상황에 따라 판단하고 내부와 더 잘 소통할 수 있죠. 좀 더 질 높은 기사가 나올 수도 있고요.”

세월호의 쓰라린 경험을 반성하고 이를 계기로 언론은 변화, 성장해야 한다. 언론계 내부의 공감대와 기자들의 연대의식, 언론사 차원의 결단도 필요하다. “취재원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해요. 재난현장에서 가족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열어야죠. 일반 취재현장도 마찬가지예요. 일이 가져오는 비인간적 측면을 의식하지 못하면 취재방식이나 행동이 부정적 이미지를 줄 수 있죠. 결국 취재현장에서 기자라는 직업의 가치가 떨어지고 언론이 신뢰를 잃게 되면 사회 발전에도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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