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대지 말고 자신부터 응시해야"
이달 말 정년퇴임하는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4.04.16 13: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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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선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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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기억은 1988년 한겨레 창간
해직기자, 좌절 말고 자신감 가졌으면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이 이달 말 정년퇴임한다. 만 59세. 반평생을 보낸 일터와 공식적인 작별이다. 한겨레에서 정년퇴임은 흔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여기자로는 두 번째다. 역사가 길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자의나 타의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더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켰다. “한겨레를 만든 사람으로서 경력이 끝날 때까지 남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신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여겼다.
한겨레 창간 멤버로서 한겨레에 대한 그의 사랑과 책임감은 남다르다.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꼽는 순간이 88년 한겨레 창간이다. “80년대의 끔찍한 억압적 상황을 뚫고 자유언론을 만들었다는 것, 무엇이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신문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건 한 개인으로서도, 우리 역사에서도 감동적인 순간이죠.”
1978년 코리아타임즈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기자직에 대한 열정을 막 품기 시작하던 80년, 언론자유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그리고 8년 뒤, 민주화의 결실로 탄생한 한겨레는 경력 3년차의 해직기자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한겨레 최초의 여성 특파원부터 중앙 종합일간지 사상 첫 여성 사회부장(민권사회1부장), 편집국장, 편집인까지.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거저 주어진 영광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고 싶다고,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강하게 얘기했어요. 여성들도 쭈뼛거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얘기하고 기회를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진보언론’이란 말 대신 ‘민주언론’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민주언론의 시대적 소명은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작금의 언론은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수준까지 와버렸다”며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게 된 사회에서 한국 신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위기를 자초한 데에는 기자들의 책임도 크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언론 환경에 맹목적으로 추수(追隨)하는 언론인이 되어선 안 된다”는 고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쉽게 자기 응시를 포기하고 추수하는 언론으로 변해버리니까 젊은 기자들이 사주의 주구가 되어버리거나 하는 거죠. 거짓말이나 핑계대지 말고 스스로를 응시하는 사람이 된다면 언론환경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언론뿐 아니라 기자들 각자가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기자가 단순히 밥벌이를 위한 일은 아니잖아요. 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며 소통해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선 소통의 문법부터 달라져야 한다. 심지어 정치기사조차도 지금의 글쓰기 방식을 버려야 한다. 그가 대표이사로 참여한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실험을 한 달여 지켜보며 얻은 결론이다. “정치적인 의미의 민주, 비민주 문제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인간답게 살 수 없게 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부터 건드려 나가다보면 그것이 정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젊은 세대들이 고민하는 지점에서 그들의 언어로 새로운 삶의 관점을 보여준다면 생각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직기자 출신으로서 YTN과 MBC 등 장기화되는 해직사태를 바라보는 안타까움도 크다.(노종면 해직기자는 그와 사돈 지간이기도 하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이나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건 정말 부도덕하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해직자들이나 그의 동료들에게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금의 고통을 발판 삼아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퇴행해도 80년대로 다시 돌아가겠어요? 퇴행만 보지 말고 퇴행을 저지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훨씬 더 절실하게,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