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
제282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 / 시사IN 장일호 기자
시사IN 장일호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4.02 14:42:25
|
 |
|
|
|
▲ 시사IN 장일호 기자 |
|
|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노란봉투 캠페인’의 시작이 된 배춘환씨의 편지에 적힌 주소지로 찾아가던 1월의 어느 오후. 이미 독자의 편지는 국장 브리핑으로 지면에 소개된 터였고, 이를 읽은 독자 몇몇이 자신들도 참여하고 싶다며 편집국으로 편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국장이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솔직히 난감했다. 처음 편지를 보낸 이 독자가 ‘선수’는 아닐까. 혹시 다른 ‘노림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터뷰 하러 가서, 인터뷰를 ‘당하고’ 왔다. “파업이 정말 불법인가요?” “왜 방송 뉴스에서는 이런 기사를 볼 수 없나요?” “손해배상 소송 해법은 없나요” 시사IN을 보기 시작한지 1년 남짓 됐다는 부부는 선수가 아니라 ‘순수’했다.
기자가 가진 정보량은 일반 독자보다 훨씬 많다. 어쩌면 그래서 늘 독자보다 앞서서 판단해버리는지도 모른다. ‘이미 나온 얘기다’ ‘얘기 안 된다’라는 한 마디로 얼마나 많은 아이템들이 회의에서 죽는지(!) 떠올렸다.
그런 측면에서 ‘손배 10년 잔혹사’는 끊임없이 새로이 불러내야 할 이야기였다. 2012년 한진중공업에서 최강서씨가 손배가압류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시사IN은 3쪽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배씨의 편지를 계기로 편집국에는 매주 손배 관련 기획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31호부터 341호까지, 모두 44쪽을 썼다.
누군가 더 이상 죽지 않도록. 기획하면서, 기사를 쓰면서 신이 났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재단이 모금 파트너로 결정됐을 때, 또 손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기구인 손잡고가 출범식을 가졌을 때, 모금액의 그래프가 매일 앞으로 뻗어나갈 때, 정치권이 움직이고 법조계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을 봤을 때…. 지난 두 달은 매일이 기적이었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결국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 한 평범한 엄마가 보낸 4만7000원은 서로의 마음을 허무는 시작이었다.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 실장의 말처럼 “노란봉투가 더 많이 모여야 하는 이유”가 갈수록 분명해진다. 시사IN이, 언론이, 해야 할 일도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