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못하면 좋은 콘텐츠도 외면"
창간 20주년 맞은 한겨레21 최우성 편집장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4.03.19 15:03:07
온라인 강화로 젊은층 공략…인터랙티브 등 다양한 실험‘한겨레21’이 스무 살이 됐다. 성인식을 겸한 생일잔치는 제법 떠들썩했다. ‘1000’이란 숫자가 찍힌 3월 3일자부터 24일자 1003호까지 사실상 한 달 내내 잔치가 펼쳐졌다. ‘진중권·정재승의 크로스’, ‘김소희의 오마이섹스’, ‘X기자의 주객전도’ 등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연재가 ‘리바이벌21’이란 이름 아래 부활했고, 풍성한 상품을 내건 “역사상 가장 화려한 퀴즈잔치”도 이달 말까지 진행된다. 잔칫상을 준비하느라 지난해 가을부터 분주했을 최우성 편집장은 1003호 마감을 앞두고 피로한 얼굴로 “그래도 가문의 영광 아니냐”며 웃었다.
1994년 3월. 한국 사회가 욕망으로 꿈틀대며 팽창을 거듭하던 시절, 한겨레21은 시사주간지 시장에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며 등장했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표지디자인부터 성역을 모르는 과감한 주제의식까지 모두 파격이었다. 창간호에서 ‘김현철은 새 정부 최후의 성역인가’를 특집으로 다루며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해 동성애와 양심적 병역거부, 국기에 대한 맹세 등 금기시되던 모든 영역에 도전장을 던졌다. 베트남전 24년 만에 처음으로 현지 고발했던 한국군 양민학살 보도는 사무실이 다 부서질 정도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두 차례 민주정권을 거친 후에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찾아 나섰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준 ‘노동OTL’ 시리즈 등이 그 결실이었다. “그동안 한겨레21이 도전해 왔던 성역과 금기들이 이제는 거의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남은 성역은 과연 무엇일까? 잘 안 잡히는 거죠. 더구나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어젠더를 제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사회문화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어왔던 한겨레21은 다시 정치가 한국 사회의 중심이 된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판의 변화를 읽어내며 빠르게 성장한 것이 경쟁지인 시사IN이다. 그에 비해 사회문화적 관심도가 여전히 더 높은 한겨레21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한다. 온라인 대응도 늦었다. 모바일과 SNS 전략이 부재한 탓에 지지층이던 젊은 세대들이 멀어져 갔다.
최 편집장은 “독립매체가 아니라 한겨레신문사라는 큰 회사에 한 부서로 속해 있는 탓에 의사 결정이 늦는 편”이라며 “이번 20주년을 기회로 만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 사이트라고 하기엔 민망한’ 홈페이지도 개편하고, 따로 온라인 콘텐츠도 제작할 예정이다. 1002호부터 연속 기획으로 나가고 있는 ‘아시아 핵’ 시리즈는 인터랙티브(상호작용) 방식으로 제작 중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동영상과 함께 인포그래픽 등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트렌디한 매체로 안착했는데 20년째 오며 타성에 젖은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한겨레21을 지금껏 끌어온 생명력과 앞서가는 실험정신 같은 것들이 내부적으로 약해진 것은 아닌가 자기반성도 하게 되고요. 스무 살이 된 시점에서 그런 정신을 다시 일깨우려고 합니다.”
잡지 시장은 날로 황폐해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온라인 발행 전환을 고려하는 잡지사도 상당수다. 한국ABC협회 조사에 따르면 한겨레21 구독자 수도 감소 추세다. 가판대 판매도 크게 줄었다. 사람들이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탓이다. 그래서 어쩌다 지하철에서 한겨레21을 보는 사람을 만나면 최 편집장은 반가운 마음에 옆에 가서 한참을 지켜본다.
“시사주간지 볼륨이 크다고 볼 순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대한 욕구는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친절하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