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온상으로 전락한 방과후 학교

제281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 / 대구MBC 도성진 기자


   
 
  ▲ 대구MBC 도성진 기자  
 
취재는 대구 모 초등학교에서 불거진 특혜 의혹으로 시작했다. 이 학교 방과후 학교 과학수업을 맡은 업체를 교장 가족이 운영한다는 지인의 제보에서 비롯됐는데, 취재가 거듭될수록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교장 딸이 실질적인 운영을 하며 아내가 속칭 바지사장으로 등록한 업체는 단기간에 대구시내 수십 개 학교에 진출해 세를 불렸고, 그 과정에 ‘현직 교장의 힘’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한 교장의 비위일 것이라 여겼지만 다른 학교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교장 동생, 아내, 친척 등이 방과후 학교 업체를 운영하며 특혜를 받고 있는 사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방과후 학교가 비양심적인 일부 교장과 그 가족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겠다며 대구교육청이 대기업 지원을 받아 만든 방과후 학교 재단은 전 대구교육연수원장, 전직 교장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대구지역 방과후 학교 시장의 30% 이상을 독식하며 전관예우의 통로가 됐고, 잇단 잡음에도 교육청은 사전심의 제도를 없애는 등 규제 완화와 비리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방과후 학교 업체 선정 과정은 불공정했고, 결과는 온갖 특혜와 비리로 이어졌다. 교장에게 뇌물을 주다 적발된 한 방과후 학교 업체는 제재는커녕 이듬해부터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고, 출판사 창고에 쌓인 싸구려 교재를 사들여 학생들에게 3배 이상의 폭리를 취하며 팔고 있었다.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을 교육청은 알고 있었지만 칼을 빼들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일부 업체는 공룡처럼 몸집을 불려 교장 인맥을 등에 업은 공고한 진입장벽을 만들었다. 제대로 교육하려는 업체들에겐 참여의 기회를, 학생들에겐 수준 높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방과후 학교 강사들이 일자리를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학교와 계약을 하려면 이른바 인력 중개업체에 적게는 30%대에서 많게는 50% 이상의 과도한 수수료를 떼이며 ‘노예계약’을 맺고 있었고, 이런 행위가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것이다 보니 학교에는 이를 숨기는 이중 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특히 이런 노예계약은 대학 체육학과 학생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체육 강좌에서 많았는데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사회의 부조리를, 그것도 교육 현장에서 서둘러 경험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컸다.

수치로 보면 대구교육청은 지난해 전국 교육청 청렴도 평가에서 전체 2위, 광역교육청 1위를 차지했지만 방과후 학교를 둘러싼 비리만 봐도 현실과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방과후 학교 시범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많게는 수백 개의 강좌가 열리고 있어, 역시 수치로만 봐서는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하지만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사교육 시장을 감안하면 이 또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 ‘수치 놀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교육 평가는 강압과 왜곡을 만들고 이는 곧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져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번 기획보도로 대구교육청이 방과후 학교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안을 마련했고, 감사원도 다각적인 감사를 예고하고 있으니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그 결과에 기대를 걸어본다.

보도 말미에는 지독한 몸살에 걸릴 만큼 힘들었던 이번 기획취재에 늘 함께하며 현장을 누비고 고민을 나눈 한보욱 선배와 양관희 기자에게 이번 수상의 영광을 돌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는 보도국 선후배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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