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의 눈물-노무사들과 함께 하는 현장보고서

제281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 /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간접고용의 눈물> 시리즈는 ‘야만의 사회’로 변질돼가는 우리 노동시장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실험이었다. ‘경영합리화’니‘아웃소싱’이니 하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화장기를 제거하고 나면 사실 간접고용은 야만과 폭력의 전근대적 착취구조에 그대로 맞닿아 있다. 문제는 간접고용이 우리 일상에 광범위하게 자리잡아 다들 노동의 극단적인 비인간화에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본 기획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노무사들의 현장체험이라는 색다른 기획의 시도를 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평범한 접근으로는 ‘또 그 얘기야’하는 반응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동법의 시각에서 위장도급 혹은 불법파견의 요소를 적절하게 끄집어내 현장을 고발해 내는 측면에 있어서도 노무사들의 현장체험은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하지만 한 달씩 간접고용 현장을 체험할 노무사들을 만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실무수습까지 3개월 정도 공백이 있던 22기 수습노무사들의 카페에 들어가 공지글을 올리고 개인적으로 아는 노무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간접고용 시리즈에 동행할 5명의 노무사를 모집하는데 성공했다. 천군만마가 따로 없었다. ‘경향신문이 간접고용을 비판하기 위해 노무사들을 간접 고용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11월초부터 12월말까지 5명의 노무사들과 수시로 편집국 회의실에서 만나 서로의 체험을 공유하고 어떤 식으로 수를 채워나갈지 논의하면서 시리즈의 틀은 완성돼 나갔다. 노무사들로부터 전해들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유린 실태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코레일 발주 공사현장에서 3도 화상을 입은 건설 노동자는 원·하청간 책임 떠넘기기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근 한 달 넘게 방치돼 있었고 인천남동공단과 창원공단은 파견이 금지된 직접 제조공정에 대놓고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노무사들이 현장고발을 맡는 대신 나는 간접고용 문제 전반을 포괄하는 기획을 책임졌다. 중앙노동위원회 사건검색 정보, 알바천국 구인정보 등 그동안 연구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던 정보들을 주로 이용했다. 이를 통해 2007년 이후 33개 대형인력공급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인용률이 12%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밝혀냈고 알바천국 메인화면 구인광고의 70%가 원청의 이름을 내건 간접고용 광고임도 확인했다.

그렇게 2달간 준비 끝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월6일 간접고용의 눈물 시리즈 첫 회를 출고했다. 다행히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포털 다음과 네이버에는 매번 탑(Top)기사로 소개가 됐고 간접고용 노동자들로부터 제보가 쇄도했다.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던 억울한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편집국 선후배들도 “기사 잘 보고 있다”며 응원을 해줬다. 그럴수록 부담은 더 늘어났다. 휴대폰, 화장품, 냉장고, 카드사 등 원청업체들은 “협력업체가 불법을 저지른 것인데 왜 우리가 욕을 먹어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시리즈가 나갈 때마다 매번 작두를 타는 무당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리즈의 부담에서 해방됐다는 느낌보다 더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아픔을 소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20년 기자생활동안 가장 감정적 소모가 많은 작업이었다. 바람이 있다면 이 기사가 당장은 아니라도 우리사회 무관심의 장벽에 균열을 가져오는 의미 있는 기록이 됐으면 한다. 5명의 노무사들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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