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마저 휩쓸린 역경의 땅
제279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사진 / 국민일보 구성찬 기자
국민일보 구성찬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2.25 12: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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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구성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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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 중부지역은 매년 평균 열여섯 개의 태풍이 지나가는 재해의 땅이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슈퍼태풍의 궤적을 따라 이 지역은 처절하게 초토화 됐고, 인명피해는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 역시 송두리째 파괴된 삶의 터전 위에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사투에 내몰렸다.
취재를 위해 현지에 도착한 시점은 이들의 절박함이 한계점에 몰려 있을 때였다. 현장은 참혹했고, 삶의 조건은 가혹했다. 대규모 폭동 직전까지 간 절박한 상황에서 보도의 무게중심 역시 재앙에서 구호활동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취재에 동행했던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필리핀 세부 도착 직후 현지 교회와 협력해 하루만에 8톤의 구호물품을 준비했다. 이를 가장 피해가 심각했던 타클로반으로 옮길 방법을 고심하던 중, 필리핀 해군 수송선 바코로드시티호가 세부 인근 군항에 정박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타클로반으로 직항할 예정이었던 수송선이 기상악화로 피항하면서 구호품을 운반할 극적인 활로가 열린 셈이다.
수송선은 의미 있고 중요한 뉴스의 현장이었다. 선상 취재를 통해 바코로드시티호가 필리핀 정부 최초의 구호 물품 운반선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태풍 피해 발생 이후 대규모 구호물품을 공항이 아닌 항구로 실어 나른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수송선이 타클로반 항구에 도착하자 ‘한국의 온정’은 현지 정부 관계자들을 감동시켰고, 군 병력의 호위 속에 구호품은 이재민들이 모여 있던 공설 운동장으로 향했다. 굶주림 속에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애타게 구호를 기다리던 이들에겐 한줄기 단비와도 같은 물품이었다.
타클로반에서의 본격적인 구호과정 전반을 보도한 것과 함께 초토화된 세부 북부 지역을 취재할 수 있었던 것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부서진 도로변에 몰려 나와 손팻말을 들고 음식과 물을 호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절박함 그 자체였다.
대규모 자연재해의 피해 현장을 취재할 때면 자연의 가공할 위력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류의 동질감은 지구촌 곳곳에서 답지한 도움의 손길로 이어지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었다. 절망만 남은 것으로 보였던 부서진 땅에 그래도 희망의 싹이 움트고 삶은 계속됐다.
태풍 관련 보도와 지속적인 관심이 폐허 속에서 다시 삶을 일구는 이들에게 조그마한 응원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