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관서 대일항쟁·징용·학살 명부 무더기 발견

제279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 연합뉴스 이율 기자


   
 
  ▲ 연합뉴스 이율 기자  
 
‘더 블러디 히스토리(The Bloody History)’. 이달 초 출근길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영문명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로만 받아들였던 먼 옛날 일제강점기 역사가 갑자기 ‘피’라는 말과 함께 가슴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중요한 옛 자료가 발견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는 정보를 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하면서 시작된 이번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 취재과정은 ‘피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는 기회였다.

정보 입수 후 서울과 도쿄에서는 정부의 철통보안을 뚫기 위한 첩보작전이 시작됐다. 주일 한국대사관과 외교부, 국가기록원 등 통상적인 취재 루트의 당국자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지만, 일제 강점기 관련 민간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을 두루 취재한 게 빛을 발했다. 서울과 도쿄에서 취재된 내용을 서로 공유하며 퍼즐 맞추기를 한 끝에 드러난 전체 그림은 놀라웠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8년 만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 정부가 36년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국민의 수난사를 처음으로 실질조사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첫 정보 입수 후 2주일여만인 11월 17일 일본 도쿄의 주일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1950년대 한국 정부가 작성한 3·1운동, 강제동원, 관동(關東·간토)대지진 등의 피해자 명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스트레이트와 박스기사를 단독보도했다.

정부가 지난 6월 명부를 발견하고서도 관계부처 간 협의를 벌이며 5개월째 발표시점을 늦춰오던 상황에서 이번 보도는 정부의 발표시점을 앞당겼고, 한국과 일본, 중국간 과거사 논란의 새로운 변곡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에 6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명부는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수난사를 다시 쓸만한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특히 지금까지 한 번도 불리지 못했던 3·1운동 순국선열과 관동대학살 희생자들의 이름이 60년 만에 드러났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특히 관동대학살 명부 분석 결과, ‘쇠갈쿠리(쇠갈퀴)로 개잡듯이 학살’ ‘죽창으로 복부를 찔렀음’ ‘곡갱이(곡괭이)로 학살’과 같이 일본 민관군이 공통으로 저지른 학살의 참혹성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명부 발견에 따라 순국선열과 관동대학살 희생자들, 일제 강제징용자들에게 피해보상의 길이 열리게 됐다. 정부는 정부·지자체·재외공관에 대한 과거사 기록 전수조사에 착수했고, 과거사 기록관리체계를 점검하는 중이다. 이번 기사가 또 다른 과거사 기록을 발굴해내고 정부의 기록관리체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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