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단청 박락

제278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 경향신문 이상훈 기자


   
 
  ▲ 경향신문 이상훈 기자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시사주간지 기자가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월요일 점심. 구내식당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광고국 기획위원으로 있는 김경은 부장과 마주쳤다. 김 부장은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라며 “복원된 숭례문의 단청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식사 후 망원렌즈를 챙겨서 현장으로 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에는 일반인 관람을 위한 개방을 하지 않는 날이어서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펜스 밖에서 600mm 망원렌즈를 꺼내들고 숭례문을 한 바퀴 돌아보니 단청에 별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이 있으니까 소문이 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누각 2층의 서까래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1시간30분 정도 흘렀을까. 망원렌즈로 단청사진을 찍고 최대한 확대해 보기를 반복하니 조금씩 이상한 단청이 발견됐다. 카메라 모니터 상에서 이상이 확인된 단청만 7개, 그 중 4개가 남쪽에 몰려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모두 동원돼 국민적 관심 속에 복원된 숭례문 단청이 이렇게 흉한 모습을 드러낼 수가 있는가.

회사로 돌아와 문화재청을 출입하는 본지 문화부 도재기 부장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현장 상황을 상세하게 전해주었다. 도 부장은 곧바로 문화재청과 단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로부터 단청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증거사진을 손에 쥐고 물어보는 도 부장의 송곳질문을 피해나갈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복원 5개월 만에 형편없는 모습으로 전락한 숭례문 단청의 훼손사실을 지면에 게재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에 기사가 나간 당일 문화재청은 숭례문 현장에서 기자설명회를 열어 단청의 훼손상황 및 향후 수리 계획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대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었다. 일반 토목공사 현장처럼 공기에 맞춰서 충분한 조사와 연구, 실험 없이 복원공사가 진행된다면 제2, 제3의 숭례문은 또 나올 수밖에 없다.

26년차 기자가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머쓱하기만 하다. 하지만 옛날 같으면 퇴직할 나이에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바람이 있다면 기자생활 30년차 기념으로 대특종을 하나 터뜨리고 퇴직하고 싶다는 것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하지만, 열심히 뛰어다니다보면 운도 비켜가지 않으리라 믿는다. 제보해준 김경은 부장과 신속하고 정확한 확인으로 원석을 보석으로 다듬어준 도재기 부장과 영예를 함께 하고 싶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