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 후쿠시마의 진실

제27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 / KBS 윤지연 기자


   
 
  ▲ KBS 윤지연 기자  
 
후쿠시마의 가을은 맑고 고요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유난히 청명하고, 들녘에는 벼가 영글어 간다. 누렇게 물들어가는 가을 들판의 적막을 깨는 것은 증기기관차의 기적 소리뿐이다. 힘찬 연기를 내뿜는 육중한 검은색 기관차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달리는 것 같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여전히 잔인하다.
잠시나마 차창 밖에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광에 매료될라 치면, 운전석 옆에 설치한 ‘공간 선량계’가 수시로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며 경고음을 울려대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각인시킨다. 방사능 오염 지대를 피해 강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는 무겁고 아프다.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고향집을 찾아 손때 묻은 집기류를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후쿠시마의 현재는 바로 이 ‘평화로움과의 싸움’으로 보인다.
취재팀은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바다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250㎞ 이상 떨어진 도쿄만까지 광범위한 바다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지 대학과의 공동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오염수 통제에 심각한 결점을 드러냈고, 제염작업 폐기물을 쌓아둘 장소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지에서 ‘방사능 공포’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원전사고로 중단했던 조업을 재개한 어부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자면, 마스크를 쓰는 일 조차 머쓱할 정도였다.

취재팀 뿐 아니라, 일본인 스스로 ‘방사능 위험’을 말하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취재를 통해 만난 이들 가운데 방사능 위험을 걱정하는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신원 공개를 꺼렸다. 그들의 입을 막는 것은 정부나 거대 권력이 아니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이주를 원하는 주부가 염려하는 것은 ‘유난 떨지 말라’며 핀잔을 주는 남편과 친척들이었고, 도심의 방사능 오염 지역을 찾아 알리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것 역시 지역사회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의 현재’만큼 중요한 부분이 바로 ‘우리 식탁의 안전성’이었다. 이를 위해 국내 취재를 맡은 손원혁 기자는 부산 어시장 주변에서 며칠씩 잠복 취재에 나섰고, 김연주 기자는 다양한 경로로 국내에 들어오는 일본산 식품 전반을 점검했다. 이렇게 취재한 내용은 일본 현지 취재 분량과 함께 이주형 팀장의 지휘 아래 50분의 ‘시사기획 창’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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