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이대로 좋은가
제277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방송 / 광주MBC 김인정 기자
광주MBC 김인정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06 15: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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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MBC 김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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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겨울 새벽, 낯설었던 경찰서가 기억납니다. 수습기자였던 저는 형사과 구석에 앉아 경찰관들이 수사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지요. 그들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쌍방폭행 조서를 꾸미기도 했고, 술에 취한 사람이 소리를 질러대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흘끔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난해서 음식을 훔친 피의자에게 더운밥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경찰서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저는 ‘법의 얼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명쾌한 언어로 모든 것을 단 한 차례만 설명해주는 종이법전에 비해 경찰은 얼마나 다양한 ‘법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들은 울고, 웃고, 화를 내고, 피곤해 하고, 짜증도 내고, 모든 것에 무감하기도 하고, 때론 동정하고, 공감했습니다.
경찰관들의 개인정보 무단조회에 대한 취재는, 그래서 적어도 저에게는, 분노에서 시작된 취재는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잠깐이나마 그들의 변화무쌍하고 불완전한 얼굴을 지켜본 경험에 비춰보면, 충분히 있을법한 실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정보 무단조회는 있을 수 없고, 용인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경찰청 감사 결과에 나온 경찰들의 개인정보 무단조회 사유는 사실 약간 웃음을 자아내는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야간근무를 서다가 텔레비전의 야구중계를 보고 호기심이 일어 야구선수의 주소를 들여다보기도 했고, 어떤 이는 동창회 총무를 맡아 추억을 더듬으며 동창 3백여 명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뭐라고 지적하기도 난처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들입니다.
취재진은 행정심판을 통해서야 감사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나긴 싸움 끝에 펼쳐보게 된 자료에는 그들이 보여준 수많은 ‘법의 얼굴’ 가운데 가장 미숙하고 철없는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개인정보를 돈을 받고 팔아 넘겼다는 대목에서는 시작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분노까지 느끼게 됐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없긴 힘들겠지요. 하지만 경찰이 일을 편하게 하겠다고 온라인에 개인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5년 전, 무단조회나 불법유출 같은 실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나 주소, 전과 같은 민감한 나의 개인정보를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게 공권력이라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누군지도 모르는 경찰관이라면 어떨까요. 그렇게 가면으로 가린 얼굴은 더 이상 친숙한 ‘법의 얼굴’일 수가 없는 겁니다. 개인정보가 헐값에 사고 팔리는 시대, 개인정보만 알아내도 누군가를 위협할 수 있는 시대. 법이 지켜줘야 하는 건 힘없는 개인들의 가리고 싶은 맨 얼굴 아닐까요.
이번 보도로 단 한 명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고자 했습니다. 큰 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