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예방의 새로운 대안 '셉테드'
제277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신문 / 부산일보 조영미 기자
부산일보 조영미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11.06 15:50:51
|
 |
|
|
|
▲ 부산일보 조영미 기자 |
|
|
3년 전 부산 사상구 덕포동 공·폐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김길태는 이곳에서 여중생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유기했다. 이후 한 달 간 공·폐가를 떠돌며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김길태 사건 이후 부산 전체에 흩어져 있는 공·폐가를 관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우범지대 사는 주민들이 스스로 주변 환경 정비에 나섰다. 본보는 여기에 주목했다.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범죄예방 환경디자인)는 이런 부산의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이론이었다. 마침 부산지방경찰청, 부산디자인센터도 셉테드의 취지를 공감하고 있는 터였다.
지난 3월 경제부 김형 기자를 주축으로 셉테드 취재팀이 꾸려졌다. 경찰, 디자인 전문가 등으로 셉테드 위원이 선정됐다. 사회부 경찰 기자들은 10회에 걸쳐 공·폐가, 원룸 밀집지역, 공원, 아파트 등 범죄 취약 지역 현장 취재에 나섰다. 실제로 범죄 취약 지역을 가보니 범죄를 저지르라고 부추기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본보 셉테드 위원들은 셉테드가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페인트색 하나만 바꿔도, CCTV가 있다는 표시만 해도 범죄가 예방된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셉테드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김형 기자는 호주에서 가장 먼저 셉테드를 도입한 뉴사우스웨일즈주를 방문했다. 이후 선진국의 셉테드 적용 방식을 확인하고 시사점을 제시했다.
셉테드 보도는 지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부산대 기숙사를 셉테드 위원들과 함께 점검해 본 현장취재는 부산대 국정감사에서도 국회의원들이 인용하며 화제가 됐다. 부산대 여자기숙사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 뒤, 취재진이 부산대 전체 기숙사를 셉테드 관점에서 취재한 결과 여전히 아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통제가 허술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셉테드 기획취재로 지역사회가 변하기 시작했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는 ‘셉테드 보행등’이 설치됐다. 무엇보다 전국 최초로 셉테드 의무 적용을 위한 ‘부산시 안전한 도시 만들기 조례’, ‘부산시 빈집 정비 지원 조례’가 제정되는 성과를 낳았다. 김길태 사건이 발생한 사상구 덕포동에서는 재정비를 위한 ‘안전한 덕포동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상은 기자가 받은 상이 아니다. 셉테드의 취지에 공감하고 발로 뛴 경제부 김형 기자와 사회부 경찰기자 8명이 받은 상이다. 셉테드 취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부산일보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하다. 본보 취재를 계기로 부산이 안전하고 사람 사는 냄새 나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