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좋아져야 신문이 산다…민생 위해 타협없이 보도해야"
[기협 인터뷰] 세계일보 조한규 사장
김희영 기자 hykim@journalist.or.kr | 입력
2013.10.16 15:03:54
“정확한 의미 해석과 평가·비판과 대안 제시로 활자매체 강점 살리겠다”NLL 대화록 논란이 정국을 마비시키고 있지만 국가기록물에 대한 문제제기를 최초로 한 언론이 세계일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깊이 있는 탐사보도와 의제를 발굴하는 감각으로 우리나라 주요일간지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세계일보.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은 침체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래서 신사옥 입주로 ‘신문의 거리’ 광화문에 입성한 세계일보 구성원들은 새로운 의욕을 얻고 있다. 희망의 불씨를 지필 천재일우의 기회에 세계일보의 사령탑이 된 조한규 사장을 14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사옥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세계일보가 ‘광화문 시대’를 맞았다. 회사 내·외부에서 기대가 크다.“언론 환경이 척박해지고 광고 시장도 줄었다. 기자들의 급여가 낮아져 생활 여건도 열악하다. 사명감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다. 이제 신문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과거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라디오를 사양산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라디오 나름의 자리를 찾았다. 신문도 활자 나름의 가치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가 관건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큰 고민이다.”
-세계일보가 도약해야 하는 시기에 사장직을 맡아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솔직히 신문사를 나갈 때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룹에서 그동안 세계일보에 일했던 사람 중 신문을 잘 알고, 교섭능력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을 찾은 것 같다. 세계일보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창간 초기 멤버인데 현재 세계일보의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나.“과거 있을 때보다 세계일보 위상이 낮아졌다.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그때는 편집국 인원이 지금의 2배였다. 용산 사옥에 있을 당시 편집국 공간만 해도 지금보다 열배 가까이 컸다. 또 신문의 영향력도 그렇다. 세계일보는 탐사보도가 강점이었고, ‘이달의 기자상’도 자주 받았다. 그런데 요즘은 좀 그렇지 못하다. 스마트 시대에 활자매체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을 살려야 한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해석·평가·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 지면이 많이 바뀔 것이다. 제호와 디자인이 세련되게 변화된다. 오피니언 면도 강화할 계획이다.”
전문기자 육성 등 지면 차별화 박차-지면 변화의 방향은. “지난 취임식에서 ‘힘 있고 정의로운 강정신문(强正新聞), 품격 있는 명품신문(名品新聞), 독자들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미소신문(微笑新聞)’을 강조했다. 고품질의 신문을 지향해야 한다. 우선 오피니언 면은 실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할 것이다. 불안한 사회에서 등대와 같이 길을 밝혀줘야 한다. 사설이 양적으로도 늘게 될 것이다. 또 대안 위주로 가야 한다. 세계일보 사설을 보면 정책 방향이 보이고, 국가와 사회가 가야할 길이 보여야 한다. 또한 내부적으로 전문기자들을 많이 육성하려 한다. 같은 사안을 더 깊이 있게 다뤄 지면을 차별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도 다양하게 할 것이다. 패션, 코스메틱 등 소프트뉴스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세계일보의 탐사보도가 강할 때는 사회비판, 여론주도 능력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때만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그래서 1차적으로 특별기획팀이 민생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달한다. 서민들은 빚 때문에 결혼도 못한다. 당장 직장을 퇴사하면 금리가 낮아지는 게 아니라 높아진다. 말이 안 되는 구조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더라도 1%의 부자만 남는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막연한 복지가 아니라 실질적인 부담을 없애주자는 것이다. 사회비판 정신을 되살려 민생을 위협하는 어떠한 권력과도 타협 없이 보도해야 한다.”
-기자들이 회사를 많이 떠났다. 명품신문을 만들려면 부족해진 인력 보강이 필요할 텐데.“MBN에 있을 때도 세계일보 출신을 여럿 만났다. 명품신문이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앞으로 경영이 나아져야 한다. 세계일보 용산 부지가 곧 개발에 착수한다. 임대 수익이 나오게 되면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임 사장이 작지만 흑자를 남겼으니 저는 도약을 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여러 가지 방안을 가지고 있다.”
-주변인들이 친화력이 좋고 인적 네트워크가 광범위하다고 평가하는데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정치부 기자 시절 초선 의원에게도, 총재에게도 동등하게 예우를 갖췄다. 당시만 해도 적잖이 소외받던 지역신문 기자들에게도 긴밀하게 대했다. 괜한 허세를 떨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나만의 장점이 됐다. 하지만 (경영은) 그것과는 별개다. 무엇보다 기사가 좋아져야 한다. 기자들은 안면몰수하고 공격해야 하는데 (내 인맥을 강조하면) 오히려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우리 집안에 700년 동안 내려온 가훈이 있다. ‘생사진퇴 무괴의자(生死進退 無愧義字)’ 살거나 죽거나 앞으로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의’에 부끄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가훈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다.”
-MBN에 있던 조 사장이 세계일보로 돌아온 것을 두고 방송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방송을 해보니 만만치 않더라. 인력과 장비, 그리고 엄청난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현재 세계일보 여건으로서는 쉽지 않다. 오히려 방송을 하면서 신문의 갈 길을 깨달았다. 방송은 신문에 비해 깊이가 부족하다. 또 방송에서 신문 브리핑을 하면서 신문을 재해석하게 된 것도 있다. ‘스마트 시대에 신문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스마트시대 걸맞는 새 플랫폼 검토중-최근 몇몇 신문이 뉴스 유료화를 시작했다.“유료화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스마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플랫폼을 생각하고 있다. 검토 중인데 아직 자세히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광고나 콘텐츠 판매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세계일보에 맞는, 세계시장에 먹힐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현재 문화부에서 준비 중인 콘텐츠는 일본에서 관심을 가질 사안이다. 여러 가지를 연구 중이다.”
-‘새로운 플랫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예를 들면 기자들이 취재를 하면서 동시에 리포팅을 하는 방법 등이 있다. 8년 전 스포츠월드를 만들 때 기자들에게 동영상 카메라를 전부 지급했다. 아마 그것을 계속 해나갔으면 그 콘텐츠만도 상당했을 텐데 아쉽다. 즉 텍스트와 영상을 결합해 어떤 플랫폼에서도 공급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기기를 통해서든 보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장 재임기간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내년이 세계일보 창간 25주년이다. 절기로 따지면 곧 새로운 절기가 시작된다. 세계일보가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플랫폼을 열게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마이뉴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인터넷뉴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일보도 스마트시대에 맞는 도전을 하겠다. 또한 국가와 사회가 가야할 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대담=장우성 기자, 정리·사진=김희영 기자hykim@journalist.or.kr
친화력 뛰어난 정치통…“사람은 마음으로 느껴야죠”조한규 세계일보 사장의 집무실에는 유명 정치인들이 보낸 취임 축하 난이 겹겹이 놓여 있었다. 기자 생활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활약한 ‘정치통’이라 교류가 두텁다. 조 사장을 겪어본 대부분 사람들은 특유의 친화력과 폭넓은 대인관계를 높이 샀다.
조 사장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기억도 떠올렸다. 2002년 정치부장 시절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갈등으로 탈당을 고민하던 박 대통령은 주변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조 사장도 한명이었던 것이다. 조 사장은 박 대통령에게 “신중히 고려하시라”고 조언했지만 결국 박 대통령은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정치부 기자 출신답게 말술로도 알려져 있다. 폭탄주 스무 잔도 거뜬한 주량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 사장은 “평상시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20~30대에는 술을 잘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달라진 건 정치부장 등 직책을 맡으면서부터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 때문이다.
조 사장은 역술에도 조예가 깊다. 실제 조 사장의 친동생은 동양학자인 조용헌 전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다. 조 교수는 조선일보 인기칼럼 ‘조용헌 살롱’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서당에 다녔다는 조 사장은 지금도 명심보감을 막힘없이 외운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덕에 어릴 때부터 주역 등의 경전도 쉽게 접했다. 하지만 조 사장은 “다 옛날 이야기”라며 “이제는 마음으로 상대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 사장은 항상 젊은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정장도 ‘라인’이 살아있는 것을 즐겨 입는다. 노래를 불러도 항상 신곡을 부른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편집국 기자들과도 스킨십을 많이 하겠다는 계획이다. “말진 기자들과의 소통에도 신경쓸 겁니다. 그들과 호흡할 자세는 항상 돼 있어요. 다만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자리를 못 만들었는데, 다음 주부터 기자들과 약속을 잡을 겁니다.”
김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