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관련 건설사 골프장에서 라운딩 즐긴 MB

제276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 연합뉴스 광주전남 박철홍 기자


   
 
  ▲ 연합뉴스 광주전남 박철홍 기자  
 
사진 기자는 멀리 볼 수 있는 유리로 취재하는 사람이다. 사진기자들이 두 어깨에 메고 다니는 카메라 ‘유리’에 맺힌 상은 때론 왜곡되고, 과장되고, 흐릿할지라도 독자에게 직접 보는 것 이상의 ‘진실’을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8월 29일 오후 해남의 한 골프장 주차장에서 1㎏에 달하는 망원렌즈 유리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마주했다. 그는 골프 카트에서 엷은 미소를 지었고 카메라 렌즈 너머의 나는 활짝 웃음을 머금었다.

그날은 전국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광주·전남 일부 지역에 100㎜가 훌쩍 넘는 폭우가 내리는 등 17개 지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상황. 지역본부 선배가 취재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해남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하고 있다는 정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4대강 관련 건설사 골프장에서 라운딩한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정리됐다. 망원렌즈와 장비를 챙겨들고 광주에서 해남 골프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러던 중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찝찝함이 있었다. “골프치는 게 잘못인가?”라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이 전 대통령 본인이 행동으로 털어내게 해줬다. 입구부터 감시원을 배치한 골프장 측, 게스트하우스를 통째로 빌린 이 전 대통령 측, 취재진 도착 소식에 라운딩을 중단하고 철수한 이 전 대통령. ‘특혜’의 증거는 없었지만 4대강 공사 관련 골프장에서 언론과 숨바꼭질한 이 전 대통령의 행위는 흥미로운 현장을 눈앞에 보여줬다.

취재진을 피해 카트를 타고 골프장을 돌던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리무진 차량으로 접근하려다 취재진에 발견됐다. 300m를 달렸다. 머릿속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전력질주했지만, 현실 속 몸은 무거운 장비 속에 파묻혀 허우적댔다. 이 전 대통령 100m 앞에서 망원렌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그 순간 경호차량 한 대가 뒤에서 돌진해 왔다. 메모리카드부터 빼내 바지 뒷주머니에 숨기고 이 전 대통령이 탄 카트로 다시 뛰어갔다. 경호차량이 멈춰 서고 경호원 두 명이 뛰어내려와 몸을 붙들었다.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면 육탄전이라도 벌여볼 작정이었지만 경험 많은 경호원들은 내 몸은 놔두고 카메라 렌즈를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그 사이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짐도 챙기지 않은 채 리무진 차량에 올라 골프장을 떠났다.

가쁜 숨 탓에 사진 대부분이 흔들려 겨우 두 장의 사진을 건졌다. 두 장의 모음사진은 4대강 녹조와 비리의혹 와중에 한가롭게 4대강 관련 건설사 골프장에서 라운딩 즐기는 이 전 대통령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줬다.

사진을 찍을 때건 글 기사를 쓸 때건 누구나 기자라면 누구나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한다. 그럴 때면 카메라 안의 유리가 흐릿해져 초라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항상 유리를 닦아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힘을 주는 사랑하는 이와 든든한 연합뉴스 선배, 동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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