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등기행정' 수십억 주택채권 날벼락 파문

제276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 / 부산일보 이현우 기자


   
 
  ▲ 부산일보 이현우 기자  
 
법원은 뻔뻔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당당했다. “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쓸데없이 불평한다”고 국민을 윽박질렀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든지, 아파트 등기를 포기하든지 알아서 하라”고 억지 부렸다.

알고 보니 법을 제대로 모르는 쪽은 법원이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남부산등기소는 전혀 엉뚱한 법률 근거로 740여 명의 서민아파트 집주인들에게 거액의 경제적 부담과 손해를 강요했다. 주거환경개선지구 내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경제적 약자들은 가구당 300만~500만 원에 달하는 국민주택채권을 강제로 사야 했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따른 건축허가를 받는 때와 부동산등기를 하는 때에는 주택법 제68조의 국민주택채권의 매입에 관한 규정은 적용하지 아니한다.’(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42조)

너무나도 명백한 이 법률 조항을 법원은 끝까지 외면했다. 법률 근거를 내미는 민원인들에게도 “당신이 잘못 알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기자가 확인에 나서자 “법률은 맞는데 해당 지역이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가 아니다”는 궤변으로 맞섰다. 온갖 법률 근거를 들이대며 기자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국토교통부, 부산시, 부산 남구청, 부산도시공사 등 관련 기관 어디에다 확인해도 같은 답이 돌아 왔다.
“법원이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가 맞습니다.”

그런데도 법원 등기소 측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지방도시공사가 법률을 오해하고 있다”고 버텼다. 한 달에 걸친 끈질긴 취재 결과 법원이 법률 적용을 엉터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등기 관련 법률 근거인 대법원 등기처리규칙의 엉뚱한 조항을 기준으로 업무를 처리한 것이다.

신문 보도로 법원의 황당한 행정처리를 폭로하자 이번에 법원은 ‘오리발 작전’으로 나왔다. 법원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아파트 시행사인 부산도시공사가 모든 일을 잘못 처리했다고 떠넘겼다. 영문도 제대로 몰랐던 저소득층 밀집지의 주민들은 법원의 강요로 큰돈을 날린 사실에 분노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사과는커녕 책임 회피에만 몰두했다. 사회적 비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법원은 백기를 들었다. 피해자들에게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그제야 사과문을 돌렸다. 제도개선에도 나섰다. 사회적 파장 속에 손가락질이 쏟아지자 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두 손을 든 것이다.

진작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 제기를 외면하지 않고 조금 더 깊이 살펴봤다면 얼마든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었다. 고압적 태도로 ‘갑질’만 하는 법원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자 “통쾌하다”는 응원이 쏟아졌다. “안타깝다”는 걱정은 전혀 없었다. 슬픈 일이다. 사법부의 생명의 뿌리는 국민의 신뢰이다. 사법부의 뼈저린 뉘우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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