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철저한 진상규명을"

'국정원 특종 기자' 한겨레 정환봉 기자


   
 
  ▲ 한겨레 정환봉 기자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수백, 수만 개의 촛불이 광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1월 기사 하나가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오늘의 유머’ 인터넷 게시판에 국정원 여직원이 쓴 정치적 글이 다수 발견됐다는 한겨레 정환봉 기자의 단독 보도였다. 지난해 대선 기간에 불거진 국정원의 정치 개입 문제를 세상에 다시 끄집어낸 첫 신호탄이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경찰서 앞에서 만난 정환봉 기자는 ‘국정원 특종 기자’라는 수식에 “부담스럽다”고 손을 저었다. 지난 7개월을 돌아보며 “아직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답답하고 스스로 부족했는지” 반문하면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개입 논란을 부른 ‘원장님 지시ㆍ강조말씀’,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등 ‘국정원 정치공작 문건’ 등으로 지난 1월에 이어 3월, 5월 세 차례나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지난 3월 수상 후기에서는 “국정원 없이 올 상반기에 기자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이 같은 보도에는 회사와 팀원들의 배려, 위험을 감수한 취재원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수많은 국정원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월 31일 단독 보도다. 단순한 의견 개진이라며 게시글, 댓글과 관련한 혐의를 부인하던 경찰을 수사에 나서게 했다. 4월 검찰로 사건이 송치됐을 때도 관련 혐의가 적용됐다. 정 기자는 “언론의 견제가 경찰의 축소 수사를 드러나게 했고, 결국 검찰 수사에서도 좀 더 진전된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특종’ 기자라는 이면엔 어려움도 많았다. 첫 보도를 위해 제보자를 설득하는 과정만 20여일이었다. 1월 초부터 전화와 메일 등 꾸준히 접촉하며 이야기를 나눈 끝에 마음을 열었다. 사실 확인을 위한 국정원의 답변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공식적인 요청에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국정원에는 최소한의 확인을 거쳤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사건의 개연성을 파악했다. 문건에 적시된 내용을 의심하며 일일이 확인했고, 관련 인물 및 단체를 취재하며 정황을 발견했다.

“보도가 나오기 전날 밤엔 쉽게 잠들지 못했죠. 90% 이상 확신해 보도했지만 혹시나 일말의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걱정됐어요. 정보와 사실 확인이 어렵다보니…. 자칫 이전 기사와 한겨레에 대한 신뢰까지 무너질까 부담이 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부분 인정했죠.”

기사가 나간 후에는 국정원 여직원으로부터 고소도 당했다. “고소를 당해도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정 기자는 “승소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함께 고소당한 제보자에 대한 염려는 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제보를 막고자 제보를 하면 고소당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목적”이라고 비판했다.

국정원 사건은 여전히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23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막을 내렸지만 해결된 것은 없다. 정 기자는 성과도 있고 한계도 있었지만 여당 의원들의 태도는 안타깝다고 했다. 정 기자는 “오유 게시판과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을 통해 상당한 여론 조작과 왜곡이 일어났다”며 “그런데도 국정원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밝혔다.

두 달이 넘는 기간 광장에는 국민들의 촛불이 켜져 있다. 그는 “진상규명을 확실히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수사 은폐 의혹을 받는 사람들 상당수가 오히려 승진을 했다. 잘못된 일에 더 좋은 자리, 이익을 보장받는다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부 언론들의 국정원 보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 관련 보도의 의도적인 누락 의혹이 제기되고, 촛불집회가 외면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기자는 언론사별 보도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 문제제기는 어렵지만 공영방송인 KBS의 보도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KBS가 공영방송답게 국정원 문제를 다뤘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아직 국정원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정환봉 기자. 그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국정원 관련 최신 뉴스를 검색하는 등 국정원이 생활의 중심이다. 그는 “국정원이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내부에서도 철저한 개혁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 엄중히 죄를 물어야 해요. 또 국정원 내부의 개혁 의지가 중요하죠. 국정원 직원들 스스로 내부 견제와 감시를 위한 노력을 해야죠. 그렇지 못하면 외부에라도 공개되는 계기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국정원의 국가 기여도 있지만 현재는 사익을 위한 활동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내부에서도 이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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