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 영화와 뮤지컬 '종횡무진'…"글은 또다른 나"
시인 데뷔·소설 '프라이데이 리그' 펴낸 KBS 유성식 기자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3.08.21 15:17:37
에리히 프롬 같은 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보니 시인이 돼 있었고, 기자에서 다시 소설가가 됐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언제나 글을 쓰고 있다는 것뿐이다.
KBS 기자이며 시인인 유성식 작가가 장편소설 ‘프라이데이 리그’를 출간했다. 1992년 월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성난꽃’, ‘얼음의 여왕’ 등을 낸 유 기자의 첫 번째 소설이다. 이라크 전쟁 직후 혼돈의 땅에서 펼쳐지는 전쟁과 사랑, 축구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냈다.
처음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2002년 취재차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보내자는 한 신문사 광고를 보며 전쟁과 축구 이야기를 떠올렸다. 2007년 한 술자리에서 유 기자의 이야기를 들은 영화 제작자가 “필 받는다”며 영화 시나리오로 만들어볼 것을 권유했고, 그 길로 휴가를 내고 두바이로 가서 시나리오를 썼다. 이라크에 가고 싶었지만 “소설 때문에 목숨 걸지 말라”는 주위 만류에 포기했다. 완성된 시나리오는 2009년 가을 공모전에 당선됐지만 제작사가 부도가 나면서 영화화는 무산됐다.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영화계에선 비일비재했어요. 제가 그 세계를 잘 몰랐던 거죠.”
하지만 이야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이 이야기를 끝내야 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소설로 개작을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황무지를 바라보며 떠올렸던 이야기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렸던 셈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내 자신에 대한 빚을 갚았다”고 썼다.
소설을 쓰면서 그는 회사를 휴직하고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시나리오 작가 과정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대학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시인으로 등단해 KBS에 입사한 뒤에도 틈틈이 영화 시나리오를 써왔다. 비록 공모전에서 탈락했지만, 뮤지컬 대본도 썼다. “드라마 빼고” 거의 다 썼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공연이나 영화처럼 자본이 들어가고 팀을 이뤄서 하는 협업 형태는 직장 생활과 병행하기 불가능하더군요.”
아예 기자를 그만 두고 작가에 전념하면 어떨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작가의 100%는 전업 작가가 꿈이에요. 서른 넘어 글 쓰는 사람이라면 전업 작가가 돼 유명해지고 돈 벌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게 꿈이죠. 하지만 그 생활이 대한민국에선 거의 불가능합니다.”
글만 써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더욱이 2년간 휴직하면서 월급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됐다는 그다. 그는 오히려 “월급 받을 수 있는 직장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위에선 무모하다고 하지만 그는 “지금 아니면 언제 쓰나”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쓴다. 마치 기자가 마감을 지키듯 “언제까지 원고 쓴다, 하면 무조건 쓰는 거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가기보다 “모르는 것은 물어물어 가며 만드는 것” 역시 ‘기자질’ 하며 밴 습관이다.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특별히 대중의 코드나 비평가들의 ‘취향’에 맞춰 쓰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에게 글쓰기란 소통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툴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잘 못하거든요. 소통하고 싶어서, 소통에 곤란을 느껴서 그 방식의 하나로 글을 쓰게 됐고, 계속 쓰면서 발전해가는 것 같아요.”
기자 생활 20년차. 현장을 떠나 ‘관리자’의 위치가 되면서 “기자와는 다른 무엇이 되는 것 같다”며 쓸쓸함을 비치는 그는 자신이 무엇인가로 규정되길 원하지 않는다. “인생의 목표요? 그냥 계속 사는 거예요. 기자든 뭐가 됐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욕망을 갖고 있어도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항상 뭔가를 생산해내는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