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보도 논란 있지만 정부 개입 전혀 없어
미래부와 충돌 아니라 생산적 토론하자는 것
KBS 수신료 올리면 다른 매체 숨통 트일 것
기협, 성숙한 민주주의 키우는 언론 파수병되길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은 “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말한 그대로만 써 달라”는 요구를 덧붙였다. 가마솥더위로 전국이 들끓던 지난 12일, 작은 선풍기 하나가 힘겹게 돌아가던 위원장 집무실에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더위는 견딜만하다”던 이 위원장은 한 시간이 넘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미리 보내준 인터뷰 질문에 대해 공보 담당자가 정성들여 작성해 준 답변 자료는 옆에 덮어놓은 채 추가 질문과 돌발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방송통신위원장 취임 전부터 언론 인터뷰를 피하지 않고 기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해 온 그다. 종편 재승인 심사 문제에 대해 다소 말을 아끼긴 했으나 야당과 시민사회,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KBS 수신료 인상론을 비롯한 여러 언론계 현안에 대해서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17일이면 취임 4개월을 맞는다. 지난 4개월 동안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일은.“방통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방송의 공정성·공공성 확보다.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사와 언론사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방송사 인사나 방송 내용에 관해 가능하면 자율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임한 것이 ‘무행동의 행동’이라고 할까. 오히려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사청문회 때 ‘친박 중진이 왔기 때문에 최시중 전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방송을 장악할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 분의 철학이나 과거 경력과 나는 전혀 다르다. 나의 철학이나 언론자유에 대한 신념은 정부도 막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방송장악이다 뭐다 하지만 우리가 방송사 인사 문제에 대해 개입했다는 논란은 크게 없었다. 국정원 보도에 대해서도 일부에선 문제제기를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방송사 자체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 개입한 게 전혀 아니다.”
-평소 공정성을 강조하는데 요즘 방송과 언론의 공정성 수준을 어떻게 보나.“방송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생각이 꼭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언론사가 파업하면 다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수 있나. 과거 동아일보 광고 사태 때에도 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에는 참여했지만 제작거부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파업이 언론자유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국민이 언론을 접할 수 없게 하는 건 정당한 방법이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방송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더 크다.
과거 동아일보가 제작거부를 했을 때 초기엔 독자들의 격려 광고도 많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동아일보가 박정희 정권이 끝날 때까지 맥을 못 추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있다. MBC도 170일 파업하는 동안 시청률이 떨어지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거다. 파업은 결국 자신과 회사, 전체 언론자유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파업을 하기보다는 제작에 참여해서 하나라도 더 쓰고 글로써 말하자는 게 나의 일관된 생각이다.”
-사측이나 관할 기관의 책임은 없나.“사측은 여러 경영상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법을 위반해 가며 혁명적으로 가기엔 어려움이 있다. 기자들은 막 세게 하고 싶지만 경영진은 회사 자체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보는 측면이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경영진과 일선 기자들과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걸 합쳐서 언론자유를 최대한 이끌어 가는 투쟁이 좋은 거다.”
“언론, 싸움붙이기보다 공론장을”-얼마 전 미국 순방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상파-케이블 재송신 제도 개선안을 연내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에 와서 보니 방송정책이란 게 ‘만인 대 만인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더라. 각종 미디어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상파와 케이블 간의 재송신료 분쟁이다. 콘텐츠 중심의 지상파와 전송 수단을 가진 뉴미디어간의 재송신료 문제로 매년 ‘블랙아웃’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한국전쟁 60주년 기념행사에 정부 대표단 일원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것을 기회로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와 유수한 방송통신 그룹을 순방하면서 해법을 살펴봤다. 우리보다 먼저 재송신료 분쟁을 경험한 미국의 예를 점검한 결과,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지상파 방송사에 3년 주기로 의무재송신 내지 재송신 동의 선택권한을 부여한다. 지상파가 재송신 동의를 선택하면 대가는 케이블TV와 협상을 통해 결정하는데 프로그램 송출 중단 사태가 우리보다 더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FCC도 분쟁 해결을 위해 외부 중재 시스템 마련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우리도 이 제도를 중점적으로 고민해보려고 한다. 유럽은 국민 시청권 보호 차원에서 대가가 없거나 지상파가 유료방송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과 유럽 사례를 토대로 지상파 방송사의 제작역량 강화를 위한 저작권료라는 측면과 함께 유료방송 전송료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송신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UHDTV(초고화질TV)에 대해선 ‘신중론’을 펴서 미래부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왔는데.“미국에 가기 전 일본이 UHDTV 기술로 미국 시장을 선도해서 삼성을 앞서겠다는 보도를 접했다. 케이블 업계에서도 UHDTV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래부에선 지상파 방송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 같더라. 그래서 미국에서도 UHDTV를 하고 있으면 지상파도 같이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갔다. 그런데 미국은 준비도 안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할 생각도 없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TV 화면이 80인치는 돼야 화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인데, 몇 천만 원이나 하는 80인치짜리 TV를 사서 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거다. FCC는 우리보다 3년 먼저인 2009년 디지털 전환을 완료했는데도 국민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타임워너나 월트디즈니 등 미국 최대 콘텐츠 업체들도 부정적이었다. 3DTV를 도입한 월트디즈니의 ESPN도 콘텐츠 부족과 비용문제로 올해 중단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중하게 접근해야겠다고 했더니 일부에선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있는 건 있는 대로 하면서 해법을 찾아야지, 할 말 안 하는 게 좋은 건가.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콘텐츠와 함께 가야 방송이 되는 거다. 생산적인 토론문화가 중요하다. 언론들도 이런 문제가 났을 때 발목 잡는다는 식으로 싸움 붙이기보다 토론이 되게끔 공론의 장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종편에 잘못된 내용 경고했다”-언론사 하나 만들면 쉽게 문 닫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다음 달부터 종편 재승인 심사가 시작되는데 탈락 사업자는 없을 것이란 예상이 벌써부터 나온다.“심사 기준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는데 탈락 여부를 얘기할 수 있나. 나는 애초 4개는 너무 많고 2개쯤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어쨌든 4개가 생겼다. 내용이 어떻든 시청률이 1%가 넘는다. YTN이 20년 걸린 것을 1년 반 만에 4개사 합쳐서 4~5% 올렸으면 간단한 게 아니다. 그러나 초기 투자가 많고 광고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먹고살기 위해 지나치게 토론 프로그램을 많이 넣고 문제가 심각한 내용들도 많이 나왔다. 지난번에 종편 사장단을 만나서 자극적이고 선동적이고 저급한 일부 문제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다. 종편이라고 해서 껴안거나 옹호할 필요도, 일부러 적으로 돌릴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하는 거다. 재승인 심사 기준은 이달 말경 나온다. 그에 앞서 사업계획 이행실적을 점검하고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으니 시정할 거라고 본다.”
-시민단체 등이 종편의 주주 구성 문제 등을 제기하는데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이 채널A에 206억원을 투자한 게 논란이 되고 있다.“현재까지 나온 건수들은 많지만 핵심적인 5% 이상 주요 주주들에선 크게 문제는 안 되는 것 같다. 김찬경 회장의 경우도 큰 지분을 갖고 들어온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있다. 어쨌든 드러난 문제들을 점수화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이 나오면 한 개가 됐든 두 개가 됐든 탈락시킬 수도 있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미래에 이것을 할 수 있는지 시정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이건 제3의 기관을 만들어 심사하도록 할 것이다. 미리부터 내가 점수를 매기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KBS 수신료 올려야 재벌 비판 가능”-수신료 인상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전체 방송 광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KBS의 수신료 인상과 광고 축소가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KBS에서 줄어든 광고가 다른 방송으로 선순환 되리라는 전망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분명한 건 수신료를 올리고 KBS가 2000억~3000억원 정도의 광고를 하지 않으면 100%는 아니겠지만 상당 부분이 MBC와 SBS, 신문이나 종편에 가게 될 거란 사실이다.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야당 측의 논리는 풀려난 광고가 종편으로 가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인데, 내가 볼 때 종편에 실제 반영되는 것은 미미하고 MBC나 SBS로 상당 부분이 갈 것 같다.”
-KBS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수신료를 인상해선 안 된다는 반대 논리도 있다.“KBS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다. 야당 측에선 수신료 인상의 전제 조건으로 KBS 사장 선임제도 개선과 국장 임명동의제 등을 주장하는데, 인사권을 넘겨야만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수신료 문제는 경영상의 문제다. KBS의 방만한 운영 문제를 지적하며 경영 합리화를 요구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공정성 문제와 연계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권력에 의한 언론자유 훼손보다 광고에 의한 언론자유 왜곡이다. 요즘 정부에서 간섭하는 게 있는가. 지난 4개월 동안 그런 게 있었다면 이야기해달라.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게 정부가 1%라면 광고주는 50%를 하고 있다. KBS가 수신료로 운영돼야 공정한 방송을 할 수 있고 재벌도 비판할 수 있는 거다.”
-수신료를 올린다 해도 현재 나온 4500원, 4800원 안은 인상 폭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는데 적정선은 얼마라고 보나.“금액은 KBS에서 알아서 정하는 거다. 다만 수신료 2500원이 1981년에 책정됐는데, 모든 물가가 그때와 비교해 5~6배 올랐다. 지금 나온 안은 두 배는 안 되고 2000원 정도 더 올리는 건데, 이 정도 갖고 인상폭이 크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광고를 줄이게 되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부담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2년 전에 광고 축소 없이 수신료를 1000원 올린다고 해서 내가 반대했다. 왜냐하면 수신료를 올리려고 올리는 게 아니라 광고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KBS 재원을 보면 수신료 비중이 38.5%인데 광고수입 비중이 41.1%나 된다. KBS 2TV가 광고 때문에 MBC나 SBS와 똑같은 방송을 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들을 종합해서 고려해야지, 금액이 몇 퍼센트 올라가는지만 봐서는 안된다. 액수는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해직문제, 자체해결 방식돼야”-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해직언론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경재 위원장과도 얘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과는 대학 동기로 허물없이 얘기하는 사이다. 대통합위원장으로서 당연히 통합을 얘기할 수 있다. 나도 해직을 당해봐서 해직의 아픔을 안다. 원칙적 측면에 공감하고 대통합위의 활동을 지켜보겠다. 하지만 대통합위에서도 해직자들을 복직시키라고 명령하진 못할 거다. 통합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큰 틀에서 말하면 사측에서 사규와 언론자유 등의 측면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권고에 호응할 수도 있다. 다만 방통위가 ‘복직시켜라, 말아라’ 하는 것 자체가 언론사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추후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간섭할 근거를 마련하는 셈이 돼 오히려 언론자유에 반하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례를 남기는 것은 좋지않다. 내 입장은 초지일관이다.”
-지난 정권에서 벌어졌던 불행한 사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원장이 MBC나 YTN을 복종시키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앞으로 언론자유를 위해서도 그런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 방통위가 복직시키라고 하면 앞으로 내가 인사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 동정론만 가지고 할 수는 없다.”
“언론수난사와 함께 한 기자협회”-벌써 8월이다. 하반기 중점을 둘 일은.“재송신료 문제를 입법화 하고 차세대 방송과 관련해서 미래부 등과 토론해가며 준비해 갈 계획이다. 내 소원은 지금 국회 구성으로 볼 때 지난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KBS가 공영성 있는 언론으로 독립하기 위해선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거다. 수신료를 올려서 KBS의 광고를 대폭 줄이면 그것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매체들의 숨통을 틔워서 콘텐츠 제작 여건을 나아지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역점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창립 49주년을 맞은 한국기자협회에 한 마디 부탁드린다.“내년이 50주년인데 참으로 언론 수난사와 함께 한 한국기자협회라고 생각한다. 때로 보수적인 입장에선 공격 타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방식으로 이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차원보다 내실 있는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언론자유도 성숙해져야 한다고 본다. 인권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객관적 사실과 균형감각을 가지는 언론으로서의 자세에 임하고 정부도 전혀 간섭하지 않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키우는 언론으로서 파수병이 되어 달라.”
진행=장우성 기자, 정리=김고은 기자, 사진=강진아 기자
<이경재 위원장 프로필>
1941 경기 이천 출생
1964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67 동아일보 입사
1980 신군부에 의해 해직
1983 한국방송광고공사 기획부장
1984 동아일보 복직
1989 동아일보 정치부장
1990 동아일보 논설위원
1993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 청와대 대변인
1994 공보처 차관
1996 15대 국회의원 당선(18대까지 4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위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2013 방송통신위원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