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형집행정지

제27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 / MBC 임소정 기자


   
 
  ▲ MBC 임소정 기자  
 
지난 2002년 부산의 모 재벌기업 사모님이 사위의 이종사촌 여동생 하지혜양을 불륜 상대로 의심해 청부살인까지 저지른 ‘이대 법대생 공기총 살인사건’. 고인의 아버지를 통해 접한 이야기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던 ‘사모님’ 윤 모씨가 감옥 대신 6년 넘게 세브란스 병원 VIP 병실에서 지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경기도의 한 병원 특실로 옮겨 입원 중인 윤씨를 찾아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주치의의 진단서에 따르면 윤씨는 거동조차 불가능한 상태여야 했지만 취재팀이 두 달 가까이 지켜본 결과 멀쩡히 거동도 하고 식사도 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겉모습으론 불충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세브란스 병원 내부로부터 주치의의 진단서와 윤씨의 의료기록을 입수했습니다. 진단서와 의료기록의 내용은 달랐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 협조를 받아 다른 병원의 전문의들에게 분석을 부탁했습니다. 역시 진단서가 왜곡된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직접 만난 윤씨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검찰은 형집행정지 사유를 밝히라는 수십 번의 정보공개청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검찰청이 형집행정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뒤에도 진단서를 써준 주치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환자들을 진료했습니다. 윤씨의 남편 류 모씨는 언론중재위에 취재진을 고소했습니다.

해결돼야 할 일은 또 있습니다. 방송 사흘 전 서울 서부지검 차장검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대외비 공문을 보내 지난해 형집행정지 연장 당시 윤씨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전화를 걸어 윤씨가 당시 집중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방송을 재검토하는 게 좋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지금은 차장검사가 바뀌었지만 주치의는 물론 잘못된 형집행정지를 계속해 온 검찰에 대한 진상조사도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보도가 나가기 전에도 후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신 선후배들, 두 달간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 기꺼이 협조해 준 대한의사협회, 저를 지혜양이 보내준 사람이라며 굳게 믿어주신 지혜양의 아버지와 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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