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문
제272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6.05 14: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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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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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울린 건 양구이가 맛있다는 종로구 필운동의 한 식당에서였다. 마주앉은 캡과 바이스 옆에서 노심초사 소(牛) 부속물을 뒤집느라 정신없던 찰나였다. 휴대전화를 집어든 캡의 표정이 잿빛으로 변했고 그 자리에서 나는 ‘그녀’가 감금됐다고 주장하는 역삼동 오피스텔로 내달려야 했다. 2012년 12월11일, 소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의혹 사건은 그렇게 ‘발발’했다. 씹다만 양구이가 역류해 밤새 악취를 풍겼다.
사건팀 내에서 강남라인은 전통적으로 가장 ‘모진’ 곳으로 불린다. 특히 통신사인 연합뉴스에서 각종 대형사건, 사고가 빈발한 강남라인 일진 기자는 매순간을 초긴장 속에 산다, 아니 살아야 한다. 왜 하필 국정원 여직원은 역삼동에 살았을까하며 툴툴대기가 무섭게, 어마어마한 장맛비가 쏟아졌다. 외곽취재를 통한 한겨레, 경향신문의 단독보도 파상공세에 나는 매일 아침 장대비를 맞는 심정이었다. 너무 흠뻑 젖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니 경찰의 입과 눈만 바라보고 서 있던 바보 같은 내 모습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팀장(캡)은 “팩트가 맞다면 남의 기사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고 했다. 채근 대신 당근을 쥐어준 셈인데 이미 사건은 단독보도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커질 대로 커진 상태였다. 힘써야 할 것은 있는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었다. 숱한 팩트들은 ‘밝혔다’, ‘확인됐다’, ‘전해졌다’, ‘알려졌다’ 등의 옷을 입고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렇게 내 손끝에서 사건의 퍼즐은 알게 모르게 맞춰졌다. 허나 지금도 내가 써내려간 기사가 사건의 실체와 몇 퍼센트 닮았는지는 자신하기 힘들다.
많은 선후배,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정작 권은희 과장에게는 수상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상을 대신 받은 것 같다는 미안함이 앞선 탓이었다.
뒤늦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금방 답문이 왔다. “힘이 돼 줘서 내내 고마웠다”는 말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제 쉬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차마 답문을 보내지 못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휴가를 떠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