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출품작 중 가장 높은 완성도
제272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 / 기자상 심사위원회
기자상 심사위원회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3.06.05 14:39:33
KBC광주방송 ‘기아차 세습 채용 합의서’ 甲 역할 해온 노조 고발 호평제272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45편의 작품이 출품돼 올 봄에 그만큼 많은 이슈가 휩쓸고 지나갔음을 실감케 했다. 그 과정에서 기자들이 발품을 팔아 건져낸 아젠다들이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음을 반영하는 증좌이기도 하다.
연합뉴스의 ‘경찰 고위층 국정원사건 축소 은폐 지시’ 폭로 파문 기사는 취재원 보호에 역점을 두면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사건의 이면을 아젠다로 설정하는 데 성공한 기사로 평가됐다. 첫 보도는 물론 후속보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슈를 만들어가면서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및 경찰 고위층의 축소수사가 어떠한 폐해를 낳았는지 보여줬다. 예심과 본심 논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는 공감대를 얻었다. ‘YTN의 대기업 임원 승무원 폭행 파문’은 정보 확인 과정에서 기본기에 충실함으로써 자칫 묻힐 뻔했던 사건을 돋을새김했다. 감정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추악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공분을 사게 했다. 다만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이슈가 굴러가면서 반사적으로 1보의 보도가 주목을 받게 됐다는 점에서 해당 언론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겨레신문의 ‘무죄와 벌’ 기획연재 보도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종종 무시되는 현실을 심층적으로 짚어낸 작품이었다. 현직 부장판사의 학위논문에서 적시된 540건의 사례를 추적한 기자정신이 남달랐다. 현장에서 1차적으로 팩트를 발굴해내는 저널리즘의 본령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기에 손색이 없었다는 평이 우세했다. 동아일보의 ‘1호 사진의 비밀-김정은 체제 1년’은 노동신문에 실린 북한 지도자의 사진을 전수 조사한 작품이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지만 지도자의 사진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단면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 계획’(광주일보) 기사는 5·18기념일을 앞두고 사전 취재에 충실함으로써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기 위해 예산까지 편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KBC광주방송의 ‘기아차 직원 세습 채용 합의서’는 어떤 조직보다 명분을 고수해야 할 노조가 갑의 역할을 해온 관행을 고발한 수작이었다. 다른 자동차회사에서도 비슷한 관행이 드러난 적이 있지만 사회 곳곳에서 당연시되는 일그러진 갑의 문화를 깨는 데 공헌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기사로 꼽혔다. 다만 피해를 호소할 데조차 없는 일반 지원자들의 입장이 반영됐으면 보다 입체적인 보도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환경의 역습? 한강, 임진강 정체불명 ‘끈벌레’ 대량서식 국내 최초 확인’(중부일보)은 생태계의 작은 변화를 추적, 보도함으로써 정부와 지자체의 조사까지 이끌어냈다. 학술적으로 끈벌레의 서식 사실 자체는 알려졌지만 서식 규모가 크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 성과로 지적됐다. 빌 게이츠가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장면을 포착한 국민일보의 사진작품도 보도사진의 순발력이 돋보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짓밟은 행복’(프레시안)과 ‘정부의 무책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책’(경향신문) 등 같은 주제에 대해 제출된 두 개의 작품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프레시안은 한동안 잊혔던 문제의 심각성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경향신문 작품은 이를 깊이 파고듦으로써 공동체의 아젠다로 발전시켰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여러 언론매체가 협업을 통해 아젠다를 키운 사례인 만큼 특정 언론의 공으로만 돌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271회 이달의 기자상 후보작으로 제출됐던 ‘한만수 후보자 종합소득세 2억원 탈루 의혹’은 탈세 사실을 처음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수작으로 평가됐다. 다만 역외 비자금 계좌를 찾아낸 다른 매체의 작품과의 상대평가 과정에서 아쉽게 탈락한 것이지 결코 ‘단순 의혹 제기’였기에 의미를 폄하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기자상 심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