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구호 대신 구체적 행동으로"
강성남 제7대 언론노조 위원장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 입력
2013.02.27 14: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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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사진=언론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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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쉬지 않고 싸웠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언론노조 산별 단위의 총파업만 수차례. 지난해에는 산하 지·본부들의 사상 첫 연쇄 파업까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참 많이도 졌다. 언론자유를 염원하는 1만2000여명 언론노동자들의 함성은 번번이 불통의 벽에 가로막혔다. 돌아온 것은 징계와 탄압이요, 늘어나는 것은 해직자들뿐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진보의 위기, 운동의 위기라고. 언론운동 진영도 예외는 아니다. 치열한 싸움의 끝에서, 혹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을 앞둔 언론노조의 행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 언론노조 새 집행부의 어깨가 특히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위기의 언론노조’를 바로 세우는 일. 강성남 신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 무거운 과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서 MB정부에 맞서 총파업 투쟁을 이끌었던 그는 지난한 싸움이 남긴 상처를 수습하는 일 역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강 위원장은 “지금은 조직 강화와 힐링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하기에 앞서 내부 조직을 단단히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이 언론노조 내부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이자 밖에서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세력들에게는 유리한 시기”라며 “이 같은 상황 인식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영향력·정치력 필요”지난 5년간 언론계는 지각변동을 겪었다. 미디어법이 통과되며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됐고,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며 여론 지형도도 바뀌었다. 일련의 과정에는 미디어의 산업적 가치가 중심에 있었다.
“MB정권 출범과 동시에 언론이 시장판에 던져지고 종편이 출범하면서 언론의 가치가 급격하게 무너졌다. 이대로 가면 공영방송의 공공성은 무너지고 지역 기반의 신문들은 위기를 맞게 된다. 반면 재벌 언론들은 급격하게 부흥할 것이다. 언론의 빛과 소금 역할은 옛날 얘기가 되고 누가 돈을 벌었느냐가 중요해지게 된다. 이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성찰하고 고민하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은 시장에서 급격하게 버림받을 것이다.”
그는 “시장판에 던져진 언론 환경을 구조하기 위해선 언론노조가 산별다운 사회적 영향력과 정치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무늬만 산별’이었던 언론노조를 “산별답게” 바로 세우는 것은 새 집행부의 제1과제다. 그는 “산별의 힘을 갖추기 위한 규정과 규약은 물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교육과 체험이 있어야 한다”면서 “화려한 구호 대신 구체적인 행동으로 산별다운 힘을 키우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급한 것은 해고자 복직이다. 강 위원장은 “언론장악에 맞서 언론노동자로서 당연한 일을 하다 당한 피해를 복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선, 방송 정상화도 시급한 과제다. 그는 또 “MB정권의 언론장악에 가담해 언론을 망가뜨린 이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크게 보면 언론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며 “이것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무늬만 개선이고 독립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언론노조는 박근혜 정권과의 소통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미 인수위 단계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와는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 일정 부분 교감을 이뤘다. 강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이 이 시급한 문제마저 불통의 자세를 보인다면 언론노조는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부조직개편과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은 앞으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방송진흥정책을 독임제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는 정부 안에 대해 방송의 공적 기능 약화를 우려하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밝혀 왔지만, 박 대통령은 조금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강 위원장은 “정부 원안대로 가면 재벌 언론은 날개를 달고 전반적인 방송과 언론 환경은 더 천박한 시장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 안대로 통과될 경우 ‘또 다른 4대강’이라 생각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개편안은 방송 전체적으로 보면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주인 없는 생선가게에 고양이를 맡기는 꼴”이라며 “사회문화적 영역에 산업 논리를 들이대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조직개편과 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녹록치 않을 5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거창한 구호를 내세워 섣불리 싸움의 전략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5년은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MB정부의 언론장악에 저항하기 위해 언론노조 지도부가 투쟁을 선도했지만, 앞으로는 절대 혼자 앞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사’가 되기보다는 “귀로 듣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행동하는 위원장이 되겠다”는 것이다. “위원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언론노조가 산별에 맞춰서 진용을 갖추고 조직력이 강고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지도부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시스템이 해결하는 조직을 만들도록 하겠다.”
언론노동자도 자성해야끝으로 그는 언론노동자들의 자성을 주문했다. 그는 “외부의 힘에 의한 간섭과 폭력을 막아내야겠지만, 내부에서 권력과 자본에 기생하는 우리 언론인도 각성해야만 언론의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으로 가는 선배 기자들에게 회식해주고 박수쳐주는 조직을 보면 좌절감을 느낀다. 독자와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만 그런 언론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 정치적 제도를 개선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이다. 내가 왜 언론인이 됐는지 생각해보고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각성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