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 불면증 등 고통 심각…힐링 프로그램 계획"

'MBC 정상화' 나선 이성주 신임 노조위원장


   
 
   
 
육지에 사는 펭귄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곳엔 천적도 많기 때문에 펭귄은 바다를 무서워한다. 머뭇거리는 펭귄 무리에서 용감한 하나가 먼저 몸을 던지면 다른 펭귄들도 잇따라 뛰어든다. 이 용감한 펭귄을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이라 한다.

170일의 파업 이후에도 정상화의 기미가 요원한 MBC에서 2000명의 조합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노조위원장을 맡는 건 ‘퍼스트 펭귄’이 되는 일과 같았다. 5일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이성주 신임 노조위원장은 ‘MBC 정상화의 바다’에 용감하게 뛰어든 배경을 설명했다. 뜻밖에도 ‘신천교육대’에서 들은 한 강의가 그를 밀었다.

“출마 제의를 받은 뒤 한 달 넘게 고민했다. ‘앎은 삶을 변화시킨다. 아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를 듣다가 결심이 섰다. 기자로서 직업윤리를 갖고 살아온 지난 17년의 삶을 돌아봤을 때 내게 주어진 역할을 개인의 이익 등을 이유로 뿌리칠 수 없었다.”

이성주 위원장은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정상화’와 ‘치유’가 그것이다. 보도 공정성 등으로 불거진 신뢰도 하락,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징계·보복인사 등으로 바람 잘날 없는 MBC의 정상화와 그 과정 속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구성원들의 상처 치유를 말한다. 결국 현업에서 배제된 이들의 복귀가 문제해결의 첫 단추라는 게 이 위원장의 생각이다.

“교육발령, 본업과 무관한 부서배치 등으로 업무에서 배제된 100여명이 돌아오지 않는 한 MBC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드라마나 예능 쪽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많은 조직원들이 돌아오지 못한 보도, 시사 쪽은 여전히 문제가 많다. 생활밀착형 뉴스에 밀려 후보자 검증과 같은 정치뉴스는 제대로 보도되지 못하고 있다. 뉴스의 뉴스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방송 사고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005년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를 맡기도 했던 그는 민실위 활동을 강화할 뜻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노사는 공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너무 다르다. 회사는 노조를 ‘정치적’이라고 규정하며 색깔을 덧입힌다”면서 “회사가 자꾸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민실위 보고서를 더욱 자세하게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0명의 조합원들이 함께 움직여줄 것을 믿기 때문에 한발을 내딛는다는 이성주 위원장은 요즘 조합원들에게 제공할 ‘치유 프로그램’에 대해 고심 중이다. 170일의 장기파업, 이후 단행된 보복인사와 달라지지 않은 회사상황 등으로 조합원들의 고통이 엄청나다고 했다. 불면증, 우울증을 앓는 이들도 있다. 21일 조합 워크숍에서 프로그램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김재철 사장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김 사장이 취임 직후 당시 노조위원장을 만나 처음 한 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김 사장은 당시 “공정방송하겠습니다. 당당히 권력과 맞서겠습니다. 남자의 약속은 문서보다 강한 게 말입니다”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김 사장이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본인 스스로 잘 알 것”이라며 “말의 무게를 지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성주 위원장은 지난 5일 96.5%의 찬성률로 당선됐다. 보도국 기자로 1995년 MBC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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