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입성 18년차…격동의 정치 현장 생생히 목도
이정민 중앙일보 첫 여성 정치부장
원성윤 기자 socool@journalist.or.kr | 입력
2013.01.23 13: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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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민 중앙일보 정치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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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1980년대 중반, 미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성차별을 두고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고 불렀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특히 신문사 정치부는 여기자들에게 쉽게 그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활약한 대표적인 정치부 여기자는 이정민 중앙일보 정치부장을 비롯해 세계일보 황정미 부국장 겸 정치부장, 이숙이 시사IN 편집국장 등이 손에 꼽힌다. 앞서 1970년대 한국일보 이영희 정치부장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20세기 정치부에 여기자가 설 자리는 작았다.
2013년 새해, 중앙일보 사상 첫 여성 정치부장에 임명된 이정민 부장. 그는 1996년 4월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담당 기자로 정치부 생활을 시작했다. 남기자들이 그득그득했던 국회. 여기자를 바라보는 정치인들은 신기해 하면서도 배타적이었다.
“당시는 3김 정치의 가신정치, 가택정치가 있었거든요. 각 당의 주요 실력자들의 중간 보스들에게 담당 기자들은 조를 짜서 같이 움직였습니다. 계보 정치 끝물이긴 했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었죠. 여자라고 잘 안 끼워주더라고요(웃음).”
1997년 신한국당 대선을 앞두고 구룡(九龍)의 경쟁이 시작되면 정치부 기사는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한동 전 고문을 담당했던 그는 아침에는 서울 서초구 염곡동 이 고문 자택에서 기자들과 아침 식사를 같이 하며 국회로 출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정치인의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술자리는 빠질 수 없었다. 술은 죽기 살기로, 체력과 ‘깡’으로 버텼다.
초기 적응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한번 보면 잊히기 힘든 게 여기자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도 잘 적응을 하고 연착륙한 것은 선후배들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고 가르쳐준 덕분이에요. 여기자들을 핵심부서에서 훈련시키고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던 홍석현 회장의 의지도 중요했고요.”
1997년 김대중 정부의 수평적 정권교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2012년 첫 여성대통령의 등장 등 20~21세기의 정치 소용돌이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는 “권력의 부침과 몰락 과정을 보며 한 사람이 어떻게 소멸하는지 목도했다”며 “격동의 세기에 정치현장에 있었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이 가운데서도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의 인연도 있다. 이 부장은 1998년, 청와대 생활 18년, 칩거생활 18년을 끝내고 경북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한 당시 박근혜 의원을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이 부장은 “당시 대중들에게 박근혜라는 사람은 신비로운 사람이었다”며 “인터뷰를 하며 단순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인연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역풍을 맞은 천막당사의 한나라당을 출입한 야당반장으로 박 당선인을 마크하며 계속 이어졌다.
최근 인수위원회를 둘러싸고 ‘불통’ ‘깜깜이 인사’ 논란이 불거지는 데 대해 이 부장은 “불통 논란을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 부장은 “지금 인수위에서 기자들의 불편은 너무 잘 안다. 밤새 뛰어봐야 나오는 기사가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인수위에서 언론부문이 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과 관련해 당선인 측과 언론이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그 부분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 출범 1년차, 이 부장은 중앙일보 정치면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끊임없이 연구하고 차별화 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중앙일보가 단독 보도한 국회 예결위 위원들의 외유, 의원연금 통과 등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여야를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정치부 기자는 정치인의 비판자이자 조력자입니다. 가장 옆에서 정치를 보기 때문에 민심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죠. 정치인들이 기자를 안 만나려는 현재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기자가 비판을 안 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기자는 기사로 평가받잖아요. 기자가 비판정신을 잃으면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