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의 시리아, 자유와 평화를 꿈꾸다

제26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 / 국민일보 박유리 기자


   
 
  ▲ 국민일보 박유리 기자  
 
“와, 세계인들이 이렇게 많이 죽는구나.”
국제부에서 홀로 야근을 하면 수많은 죽음을 접한다. 전쟁, 살인, 화재, 테러, 재해, 사고…. 한밤 푸르스름한 모니터를 보면서 와, 입이 딱 벌어지거나 이걸 기사로 처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데스크에 전화를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하는 건 주로 신참이다.

“아프리카 수십 명 사망, 킬. 중동 테러, 킬. 중국 일본 뺀 아시아 재난, 킬.”
나중에는 이렇게 정리된다. 세계인의 목숨 값이 결코 똑같지 않다는 것, 그건 현실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걸프전, 이라크전처럼 다국적군 또는 미군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은 소위 흥행이 안 된다. 서방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일수록 접근이 어렵고, 치안이 불안해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미 국방부는 이라크전 당시 종군 기자 프로그램 임베드(Embed)를 한국을 비롯한 세계 언론에 제공했었다.

시리아 사태는 그런 면에서 국내선 주목받지 못한 전쟁이다. 미국 외교협회(CFR)가 국제분쟁으로 번질 위험국 1위로 꼽은 시리아는 우리나라엔 유독 먼 나라다. 우리 정부의 세계 미수교 4개국 중 한 곳이며, 대사관이 없고, 입국할 수 없는 여행 금지국이다.

지난 가을, 해외 취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국내서 할 수 있는 외신 번역 외의 짓거리는 다 해봤기 때문이다. SNS에 올라오는 시리아인들의 독립적인 목소리 청취하기, 이태원에서 시리아인 만나기, 시리아에서 막 빠져나온 한인 접근, 정보원을 통해 받은 시리아 내 현지인의 편지. 이것 외에 더는 할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한계는 세 가지였다. 첫째, 시리아 사태를 내전으로 보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둘째, 제대로 된 언론이 없는 그들(시리아인)의 역사를 타인(외신)의 보도를 통해 전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객관적일까? 셋째, 외신이 전하지 않는 사태의 사각지대는 없을까?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터키 이스탄불에 본부를 둔 사실상의 임시정부 시리아국가위원회(SNC)다. 외신이 시리아 내부서 전쟁을 보도할 때, 망명 정치인과 인권 활동가들이 모여든 외곽을 찍었다. 현상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 사람은 단순 난민보다는 시리아 사태를 전문적으로 풀어줄 사람이어야 했다.

사실, 내부에 들어갈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가족들과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딴(위험한)짓거리 안 하겠다고 약조했지만 속마음은 반반이었다. 걱정하는 가족을 안심시키며 입국장에 들어서는 순간,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외쳤다. ‘기회만 된다면, 제3국을 통해 들어갈 수도 있다!’

지금 고백하자면 시리아 내부에 들어갈 기회는 사실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돈이 떨어졌고, 통역과의 계약기간이 끝나갔고, 통역도 없이 들어가서 폭탄소리가 들리네 하늘에서 연기가 나네 한국 언론 최초로 들어왔네 하는 내용과 전문성 없는 호들갑스런 스케치는 뭣 같은 자존심상 쓰고 싶지 않았다. 들어갔다면 언론인보호위원회(CPJ)가 집계한 2012년 시리아 내 사망 기자 28명에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시리아 내부서 반군 수뇌부에 접근한 로이터통신처럼 잘 쓰지 못할 바에는 반정부 정치인 수뇌부에 접근하자는 것이 판단이었다. 해서 이스탄불을 찍었다. 참고로, 정부군은 기자를 사절한다. 학살을 찬양하는 기자라면 모를까.

“모든 언론이 시리아 사태를 왜 내전으로만 보도하는지 모르겠어요. 내전은 비슷한 세력이 권력을 나눠먹기 위해 싸우는 것 아닌가요? 왜 우리가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다뤄주지 않는 거죠?”

내가 만난 국내외 시리아인들이 가진 불만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민주주의, 자유, 선거, 인권 그리고 존엄성 시위를 담았다는 데 이 시리즈의 의미를 둔다.

그리고 정부로부터의 테러 위험으로 낯선 기자를 경계하던 망명 정치인에게, 그래서 도착 전 1달 동안 줄다리기를 해가며 접촉에 까다롭던 그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시리아 우리 집으로 놀러오라던 착한 난민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6만여명이 사망한 시리아에 자유가 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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